봄날의 마중

아직 괜찮지 않은 나를 데리러 가는 일

by Helia

봄은 기다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마음이 아직 겨울에 머물러 있어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고 있어도, 계절은 먼저 와버린다. 그래서 봄을 맞는 일은 환영이 아니라 마중에 가깝다. 이미 오고 있는 것을 알아보고, 뒤늦게라도 문을 열어주는 일. 괜찮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괜찮아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발 내딛는 선택. 봄날의 마중은 늘 그렇게 시작된다.
아직 외투를 벗기엔 이른 아침, 창문을 열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조금만 연다. 찬 기운이 남아 있는 바람 속에 미세하게 다른 온도가 섞여 들어온다. 어제와 같은 공기인데, 분명 어제와는 다르다. 그 차이를 가장 먼저 알아채는 건 몸보다 마음이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오늘은 어제와 같지 않을 거라는 예감. 봄은 늘 이렇게 사람을 설득하지 않고 통과한다.
봄날의 마중은 특별한 장소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꽃이 만개한 공원도, 사진 속 풍경도 필요 없다. 출근길 신호등 앞, 습관처럼 걷던 골목, 늘 닫아두던 창문 틈에서 먼저 도착한다. 겨울 동안 굳어 있던 어깨가 아주 조금 풀리고, 숨을 들이쉴 때 가슴이 덜 답답해지는 순간. 그 사소한 변화 하나로 우리는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안다. 봄은 늘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말을 건다.

봄을 마중 나가다 보면 자주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이전의 봄들, 그때의 나, 그 계절에 곁에 있었던 사람들. 계절은 반복되지만 같은 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유난히 설렘이 앞서던 봄도 있었고, 괜히 더 쓸쓸했던 봄도 있었다. 꽃이 피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마음이 뒤처진 해도 있었고, 반대로 마음이 앞서 계절을 재촉하던 해도 있었다. 그래서 봄날의 마중에는 늘 약간의 경계가 섞인다. 이번 봄은 나에게 어떤 얼굴로 다가올지, 기대와 조심스러움이 동시에 고개를 든다.

봄은 새로 시작하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다만 겨울 동안 꼭 쥐고 있던 것들을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두꺼운 옷처럼, 굳은 표정처럼, 끝내 놓지 못했던 생각들처럼. 아직 다 벗어내지 못해도 괜찮다. 봄은 성급하지 않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이 계절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봄날의 마중은 변화의 완성이 아니라 변화의 시작을 인정하는 일에 가깝다.
나는 봄을 마중 나갈 때 일부러 속도를 늦춘다. 서두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 내내 말라 있던 나뭇가지 끝에 맺힌 작은 기척, 아직 꽃이라 부르기엔 이른 연둣빛. 그 미묘한 색의 차이는 마음의 속도로만 보인다. 급한 마음으로는 절대 알아차릴 수 없는 신호들. 봄은 완성된 풍경보다 진행 중인 장면을 더 사랑한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다.

봄날의 마중은 결국 나 자신을 향한다. 겨울 동안 나는 나를 돌보는 일을 미뤄두고 살았다. 버티는 것이 목표였고, 무사히 지나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했고, 질문을 덮어둔 채 하루를 넘겼다. 하지만 봄이 오면 묻게 된다. 지금의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피하고 있는지. 봄은 대답을 강요하지 않지만, 질문을 외면하기도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이 계절은 설렘만큼이나 불편하다. 숨겨두었던 마음의 빈칸들이 햇빛 아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봄을 마중 나간다. 이 계절이 다시 믿어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졌던 시간에도, 결국은 다시 시작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말없이 증명한다. 나무는 기억을 묻지 않고 같은 자리에서 다시 새순을 틔운다. 실패를 계산하지 않고, 후회를 따지지 않는다. 봄은 그 태도 자체로 위로가 된다. 잘 해낼 수 있어서가 아니라, 다시 해보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봄날의 마중은 혼자여도 충분하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더 따뜻할 수는 있겠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혼자 걷는 길에서도 봄은 동일하게 도착한다. 마음의 상태를 묻지 않고, 준비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는다. 문만 열어두면 들어오는 계절. 그래서 봄은 공평하다. 기대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같은 빛을 나눠준다.

봄을 맞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계절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올해의 봄이 인생을 바꿔주길 기대하지 않아도 된다. 대단한 변화가 없어도 괜찮다. 어제보다 조금 덜 움츠러들고, 오늘의 햇살을 어제보다 조금 더 오래 바라봤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봄날의 마중은 성취가 아니라 태도다. 모든 것이 달라질 거라는 확신 대신, 달라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일.
봄날의 마중은 설레기 위해 나가는 것이 아니다. 아직 괜찮지 않은 나를 데리러 가는 일이다. 그대로인 채로도 한 번 더 살아보자고, 오늘을 포기하지 말자고 말해주는 시간. 그래서 봄은 늘 완성되지 않은 사람에게 더 잘 어울린다. 흔들리고, 망설이고, 그래도 다시 믿어보려는 사람에게.

오늘도 나는 봄날을 마중 나간다. 특별한 계획 없이, 다만 문을 열고 한 발짝 나서며. 아직은 차가운 바람 속에 섞인 미약한 온기를 믿으면서. 언젠가 완전히 따뜻해질 거라는 확신이 없어도 괜찮다. 봄은 늘 믿음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으니까. 봄날의 마중은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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