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받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

by Helia

도움을 받는 일이 왜 이렇게 불편해졌을까.
누군가 먼저 손을 내밀면 고맙기보다 마음이 먼저 움츠러든 적이 있다면, 아마 당신도 나와 비슷한 사람일 것이다. 괜찮다는 말을 반사처럼 내뱉고,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서둘러 선을 긋는 사람. 선의 앞에서 감사보다 경계를 먼저 꺼내 드는 사람. 우리는 언제부터 호의를 계산하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아무 대가 없는 마음을 가장 의심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을까.

선의는 늘 조용하다. 큰 소리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고, 눈에 띄는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쉽게 지나친다. 지나치고 나서야 알게 된다. 그날을 버티게 해 준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선의는 낮은 곳을 흐르는 물 같다. 중심이 아니라 가장자리로 흐르며, 필요할 때만 발목을 적신다. 넘치지 않게, 그러나 마르지 않게. 나는 오랫동안 그 물을 피해 다녔다. 젖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젖은 채로 서 있는 내가 보일까 봐.

도움을 받는다는 건 빈 곳을 드러내는 일이다. 나는 그 빈 곳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혼자 잘 버티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고, 스스로를 단단하다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선의를 받으면 늘 마음속에서 계산이 시작됐다. 이 친절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중에 어떤 값을 치르게 될까. 고맙다는 말 대신 괜찮다는 말을 택했던 이유다. 그 말은 예의가 아니라 방어였다.

우리는 선의를 자주 오해한다. 친절은 호의로, 호의는 간섭으로, 간섭은 부담으로 쉽게 변한다. 그 경계가 흐릿해질수록 마음은 더 빠르게 문을 닫는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 문은 타인을 막기보다 나를 가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선의를 거절하며 지켜냈다고 믿었던 자리는, 실은 더 깊은 고립이었다.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 준 사람이 있었다. 조언도 위로도 질문도 없이, 그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시간을 건네준 사람. 그 침묵이 이상하게도 숨을 쉬게 했다.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날 처음 알았다. 선의는 반드시 말을 걸 필요가 없다는 것을. 해결하려 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곁에 머무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건너갈 수 있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선의는 크기보다 타이밍에 가깝다. 화려한 말보다 자세에 가깝다. 한 번의 거창한 도움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작은 균형. 선의가 삶을 바꾸지 않아도 괜찮다. 하루를 건너게 해주기만 해도 충분하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배웠다. 그래서 지나간 친절들이 뒤늦게 마음에 남았다. 이미 고맙다는 말을 건넬 수 없는 얼굴들까지도.
선의를 주는 일 역시 쉽지 않다. 오해받을 수 있고, 거절당할 수 있고, 때로는 무심히 지나쳐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의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묵묵하다. 그들은 박수를 기대하지 않는다.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선의는 드러나는 순간 빛을 잃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조용히, 가능한 한 낮게 손을 내민다. 상대의 마음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부담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종종 선의를 시험한다. 이 사람이 어디까지 해줄 수 있는지,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그 시험이 반복되는 순간, 선의는 관계를 지탱하는 힘이 아니라 균열의 원인이 된다. 선의가 권리가 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다른 이름을 갖는다. 그래서 선의에는 거리감이 필요하다. 너무 가까워 숨이 막히지 않도록, 너무 멀어 손이 닿지 않지 않도록. 서로의 발을 밟지 않는 간격. 그 간격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선의를 오래 남기는 방법일 것이다.

나는 이제 조금씩 배우고 있다. 넘치지 않게 주는 법과, 미안해하지 않고 받는 법을. 기대하지 않고 건네는 마음과, 빚으로 여기지 않는 감사 사이의 균형을. 선의를 받았다고 해서 약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그 순간, 사람은 가장 인간다워진다는 것을.
아마 당신도 비슷한 장면을 떠올리고 있을지 모른다. 괜히 경계했다가 오래 마음에 남은 친절 하나쯤. 그때 왜 그렇게까지 밀어냈을까 싶으면서도,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은 순간. 우리는 모두 서툴다. 선의를 주는 일에도, 받는 일에도.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그래서 더 느리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서만 닿을 수 있는 마음이 있다.

선의는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의 하루를 조용히 건너게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아무 말로 남지 않아도. 그 하루를 무사히 지나온 사람만이 안다. 그날을 버티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리고 언젠가, 같은 방식으로 누군가의 하루를 건너게 해주고 싶어 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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