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아이, 떠난 어른
첫눈이 내리던 해, 나는 돌도 되지 않은 아이를 두고 나왔다. 사랑이 끝났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너무 간단해지고, 아이를 위해서였다고 말하면 너무 비겁해진다. 그날의 선택은 이유로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아이를 안지 못한 채 계절을 넘겼고, 아이는 나를 기억하기도 전에 나와 다른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첫눈은 그렇게, 이미 늦은 자리 위로 조용히 내려왔다.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돌아서던 날의 공기는 이상하리만치 맑았다. 하늘은 높았고, 길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잔인했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나만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 도드라졌다. 아이는 너무 어려서 울지도 않았다. 그게 가장 오래 남았다. 울지 않는 아이를 두고 나오는 일은, 울음을 남겨두고 오는 일과 닮아 있었다.
사랑은 이미 오래전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는 서로의 말보다 침묵에 익숙해져 있었다. 다투는 일조차 줄어들었고, 그 대신 피로가 쌓였다. 아이가 태어나면 달라질 거라고,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하지만 아이는 관계를 구원하지 않는다. 아이는 다만, 이미 금이 간 관계 위에 더 많은 책임을 올려놓을 뿐이다. 우리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헤어지자는 말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그러나 진짜 이별은 그 말이 아니라, 아이의 자리에서 결정되었다. 내가 데려갈 수 없다는 말, 데려가면 안 된다는 말, 그 사이 어디쯤에서 아이는 남겨졌다. 나는 아이를 포기한 사람이 되었고, 동시에 아이를 지키지 못한 사람이 되었다. 그 둘은 다르지만, 내 삶에서는 같은 문장으로 남았다.
첫눈이 처음 내리던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이는 어디에서 잠들었을까. 낯선 품에서도 체온을 잘 유지하고 있을까. 너무 어려서 나를 찾지 않는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은 죄책감이 되었다. 기억되지 않는 사람이 되는 일은,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일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다.
그리움은 구체적인 얼굴보다, 비어 있는 시간으로 찾아왔다. 내가 없어서 생겼을 아이의 첫 순간들. 처음 웃었을 때, 처음 넘어졌을 때, 이유 없이 울다 잠들었을 밤들. 나는 그 모든 장면에 없을 것이고, 그 사실을 미리 아는 채로 살아가야 했다. 그리움은 그렇게 미래형으로 다가와, 현재를 잠식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아이도, 나도 각자의 자리에서 잘 자랄 거라고. 하지만 어떤 일들은 괜찮아진다는 말로 정리되지 않는다. 나는 아이를 떠나보낸 사람이 아니라, 아이 곁에 머물지 못한 사람으로 남았다. 선택하지 않은 결과를 살아낸다는 건, 매일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일이다. 그때 정말 다른 길은 없었을까. 그 질문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미안함은 감정이 아니라 상태가 되었다. 하루의 컨디션처럼 늘 함께 존재했다. 웃고 있는 순간에도,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할 때에도, 마음 한쪽은 늘 아이를 향해 기울어 있었다. 더 안아주지 못한 시간, 더 버티지 못한 나 자신, 더 강하지 못했던 어른. 미안함은 나를 갉아먹으면서도, 동시에 나를 붙들어 매는 힘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아이를 향한 마음은 계절을 타지 않았다. 사랑은 끝났고, 관계는 해체되었지만, 아이를 향한 감정만큼은 형태를 바꾸지 않았다. 직접 키우지 못한 시간만큼 더 깊어졌고, 함께하지 못한 날들만큼 더 조심스러워졌다. 변하지 않을 마음이란, 다짐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애써 외면해도 남아 있는 것임을 그제야 알았다.
첫눈이 내리면, 나는 여전히 멈춰 선다. 흰 세상 위로 금세 지워지는 발자국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아이는 지금 어떤 사람으로 자라고 있을까. 나를 전혀 모르는 얼굴로 웃고 있을까. 언젠가 자신의 뿌리를 궁금해할 날이 온다면, 나는 어떤 이름으로 남아 있을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늘 조심스러워진다. 그리운 사람이 아니라,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기를 바란다.
나는 완벽한 어른이 아니었고, 좋은 선택만을 해온 사람도 아니다. 다만 분명한 건, 아이를 두고 돌아선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아이를 마음에서 내려놓은 적은 없다는 사실이다. 손을 놓은 것이 아니라, 거리를 건넜을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그 말이 변명이 되지 않기를, 언젠가는 설명이 되기를 바라면서.
첫눈은 매년 다시 내린다. 사랑이 끝난 자리에도, 아이가 없는 시간 위에도 가차 없이 내려앉는다. 눈은 녹고, 계절은 바뀌고, 사람들은 각자의 삶으로 흩어진다. 그러나 어떤 마음은 계절을 지나도 남는다. 돌도 되지 못한 아이에게 건네지 못한 말들, 안아주지 못한 시간들, 그리고 혼자서만 되뇌는 다짐들. 나는 오늘도 아이를 생각한다. 눈이 오지 않는 날에도.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오래 남는 사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