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났지만 실패는 아니었던 관계들
끝났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인연은 무엇이었을까. 붙잡고 싶었지만 붙잡지 않았고, 돌아서며 원망하기보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던 관계. 우리는 그런 인연 앞에서 늘 뒤늦게 이름을 붙인다. 흘러간 인연들은 좋았던 기억을 안겨준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하고. 인연이 다했기에 흘러간 인연, 한때는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즐거운 나날을 보낼 수 있게 해 준 사람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시절인연이라 부른다. 떠나보내기 위한 말이 아니라, 남겨두기 위한 말로.
사람들은 인연이 오래가야 진짜라고 믿는다. 오래 머물러야 의미가 있고, 끝나지 않아야 성공한 관계라고 여긴다. 그래서 인연이 흘러가면 실패처럼 느껴진다. 내가 부족했나, 더 애썼어야 했나,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었나. 하지만 시절인연이라는 말은 그 생각에 조용히 제동을 건다. 오래 남지 않았어도, 그 시절에 제 몫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듯해서. 관계의 가치를 시간의 길이로만 재단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알려준다.
어떤 인연은 그 시절의 나를 통과하기 위해 찾아온다. 흔들리던 마음을 붙들어주기 위해, 웃음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 혹은 울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그 역할을 다하면 인연은 서서히 물러난다. 갑작스럽게 사라지기보다, 결이 달라진 채로. 대화의 속도가 어긋나고, 침묵이 불편해지며, 예전처럼 웃지 않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들. 우리는 그 변화를 애써 부정한다. 추억이 많아서, 정이 남아서, 함께한 시간이 아까워서. 하지만 인연에도 계절이 있다. 봄에 피어난 인연이 여름까지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 봄이 헛된 것은 아니다.
한때는 매일 연락하던 사람이 있었다. 별것 아닌 하루의 조각들을 주고받던 사이. 그 시절에는 그 관계가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다. 아침 인사와 밤 인사가 자연스러웠고, 웃음과 한숨이 오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서로의 하루를 자세히 묻지 않게 되었다. 바쁘다는 말이 늘었고, 미뤄진 답장은 익숙해졌다. 누군가의 잘못 때문은 아니었다. 삶의 방향이 달라졌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 인연은 그 시절의 나에게 꼭 필요했고, 그 시절의 나를 잘 견뎌내게 했다. 그래서 떠났어도 미워할 수 없었다.
흘러간 인연을 떠올릴 때, 우리는 종종 마지막 장면으로 모든 시간을 판단하려 한다. 끝이 서운했으니 전부 서운했던 것처럼, 헤어짐이 아팠으니 처음의 웃음도 가볍게 여기게 된다. 하지만 시절인연이라는 말은 기억의 균형을 되찾게 한다. 좋았던 날들은 좋았던 날들로 남겨두고, 끝난 이유는 끝난 이유로 놓아두는 일. 그것은 미화가 아니라 정리다. 지나간 시간을 덜어내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이다.
시절인연을 받아들이는 일은 포기와 다르다. 더 이상 애쓰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애썼음을 인정하는 일에 가깝다. 붙잡지 않는 것이 무심함이 아니라 배려가 되는 순간도 있다. 더 머무르면 서로를 해칠 것 같을 때, 떠남은 마지막 친절이 된다. 시절인연은 그 친절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어도, 그 시절만큼은 진심이었음을 서로가 알고 있다면.
아마 당신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다. 연락처는 남아 있지만 연락하지 않는 사람, 소식은 알지만 더 깊이 묻지 않는 사람. 스쳐 지나가듯 마주쳐도 반갑고, 동시에 조심스러운 사람. 우리는 그런 인연을 두고 망설인다. 다시 이어갈 수 있을까, 아니면 이대로 두는 게 맞을까. 하지만 시절인연은 이어지지 않음으로써 지켜지는 관계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모든 인연이 다시 연결될 필요는 없다. 기억 속에서 제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충분한 관계도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시절인연이 된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역할. 그 사실이 서글프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동시에 위안이 되기도 한다. 모든 인연이 평생을 책임질 필요는 없다는 것. 잠시라도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었다면, 그로써 충분하다는 것. 그래서 시절인연은 관계의 실패가 아니라, 역할의 완성에 가깝다.
흘러간 인연을 떠올릴 때, 이제는 묻지 않으려 한다. 왜 끝났는지보다, 그 시절에 무엇을 주고받았는지를. 그 인연 덕분에 웃었던 순간, 덜 외로웠던 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연은 떠나도, 그 시절의 감정은 나 안에 남아 다른 인연을 대하는 태도가 된다. 더 조심스럽게, 더 다정하게, 때로는 더 단단하게.
시절인연이라는 말은 이별을 미화하지 않는다. 다만 끝났다는 사실 위에 불필요한 상처를 얹지 않게 해 준다. 지나간 인연을 실패로 부르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마련해 준다. 그래서 나는 이제 흘러간 인연들을 떠올릴 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그 시절을 바라본다. 그때의 내가 웃고 있었고, 울고 있었고, 분명히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시절인연은 떠난 사람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를 지켜준 이름이다. 그 이름 덕분에 우리는 다음 인연을 조금 더 잘 맞이할 수 있다. 끝났지만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