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밤은 언제나 수줍다.

아무 일 없었는데, 이상하게 오래 남는 밤

by Helia

목요일의 밤은 언제나 수줍다. 한 주의 중심에서 살짝 비켜난 자리, 아직 끝을 말하기엔 이르고 이미 시작이라 부르기엔 조심스러운 시간대다. 월요일의 각오와 화요일의 속도, 수요일의 피로가 차례로 지나간 뒤, 목요일은 스스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밤이 되어도 환해지지 않고, 어둠이 내려도 깊어지지 않는다. 마치 웃음과 침묵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망설이는 얼굴처럼, 목요일의 밤은 늘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있다.

그 밤에는 소리가 낮다. 도로를 지나는 차들은 유난히 서두르지 않고, 집집마다 켜진 불빛도 더는 하루를 재촉하지 않는다. 메신저의 알림은 뜸해지고, 답장은 내일로 미뤄도 괜찮을 것 같은 여유가 생긴다. 그러나 그 여유는 확신이 아니라 배려에 가깝다. 아직 주말의 자유를 마음껏 꺼내 보일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목요일의 밤은 스스로 목소리를 낮추고 자리를 지킨다. 누군가를 부르지도, 등을 떠밀지도 않는다. 그저 곁에 앉아 함께 숨을 고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공기가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비나 눈이 올 것 같은 기척이 있다. 온몸을 파고드는 겨울바람의 찬기로 파르르 떨린다. 아직 하늘에서는 아무것도 내리지 않았지만, 공기는 이미 결론을 내려버린 얼굴이다. 오늘은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날이라는 예감이, 생각보다 먼저 몸에 닿는다. 목요일의 밤은 언제나 이렇게 예고 없이 계절을 데려온다. 마음의 온도를 한 단계 낮춘 채, 준비할 시간을 조금 남겨둔 상태로.

아마도 당신도 그렇지 않을까. 오늘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더 시작하기엔 조금 지친 날.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하기엔 애매하고, 혼자 있기엔 지나치게 조용한 밤. 괜찮다고 말하느라 하루를 다 써버리고, 정작 자신에게는 아무 말도 남겨두지 못한 상태. 목요일의 밤은 그런 사람 곁에 머문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은 잠시 멈춰도 된다고 말해 주듯.

나는 목요일 밤에야 비로소 하루를 되짚는다.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속도를 줄일 틈이 없었고, 금요일에는 기대가 앞서 생각이 쉽게 가벼워진다. 목요일은 그 사이에서만 가능한 정직을 허락한다. 오늘 끝내하지 못한 말, 미뤄 둔 선택, 자꾸만 피했던 마음을 하나씩 꺼내 놓아도 괜찮은 시간. 책장을 넘기다 멈추고, 창밖을 오래 바라보다 물 한 잔을 마시고, 굳이 정리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들을 그대로 두는 밤. 수줍음이란 어쩌면, 스스로에게 너무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다정함인지도 모른다.

목요일의 밤에는 약속이 잘 잡히지 않는다. 잡힌다 해도 대개 소박하다. 늦은 식사나 짧은 산책, 혹은 한 편의 영화가 전부다. 크게 웃지 않아도 괜찮고, 침묵이 흘러도 어색하지 않다. 서로의 피로를 굳이 묻지 않고, 내일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그 소박함이 이 밤의 표정이다. 기대를 접어두는 대신, 지금의 온도를 확인하는 태도. 지나치게 가까워지지도, 그렇다고 멀어지지도 않는 거리. 수줍음은 바로 그 거리에서 태어난다.

목요일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가장 조용해지는 요일이다. 한 주가 끝나기 전,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기 위해 잠시 낮아지는 밤. 그래서 목요일은 늘 말수가 적고, 표정이 단정하다. 아직 남은 하루들을 위해, 지금의 마음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들뜨지도, 낙담하지도 않은 채로 하루를 접는 법을 이 밤은 알고 있다.

나는 이 밤에 다짐을 하지 않는다. 다짐은 금요일 아침이나 일요일 밤에 더 어울린다. 목요일의 밤은 다짐보다 질문에 가깝다.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가장 버거운 것이 무엇인지, 내일로 미뤄도 되는 것과 오늘만큼은 붙잡아야 할 것을 조용히 가려낸다. 답이 없어도 괜찮다. 수줍음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아직은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줄 뿐이다.

목요일의 밤이 지나가면 금요일이 온다. 사람들은 그날을 기다리며 한층 밝아진 얼굴로 웃는다. 하지만 나는 종종 목요일의 수줍은 표정을 떠올린다. 환호 뒤에 숨은 고요, 박수 뒤에 남는 숨 고르기. 한 주를 버텨낸 몸과 마음이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는 시간. 그 예의가 있었기에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금요일의 들뜸 속에서는 자주 잊는다.
그래서 나는 가끔 목요일의 밤을 오래 붙잡는다.

잠자리에 들기 전, 불을 완전히 끄지 않고 잠시 남겨 두는 스탠드처럼. 내일을 앞당기지 않기 위해, 오늘을 다그치지 않기 위해. 수줍음은 미완성의 미덕이다.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서두르지 않는 태도. 목요일의 밤은 그 미덕을 가장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늘 밝거나 어두워야 한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목요일의 밤은 그 사이의 색을 보여준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회색, 그러나 분명 따뜻하고 차분한 빛. 그 빛 아래에서 나는 조금 느려지고, 조금 솔직해진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하루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견딜 만한 하루를 건네는 연습을 하게 된다.

당신에게도 그런 밤이 있을까. 아무 일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오래 남는 목요일의 밤. 크게 말하지 않아도, 눈에 띄지 않아도, 밤은 제 역할을 다한다.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리고 나는 그 밤에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오늘도 수줍게, 잘 버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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