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단은 도망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경계선
차단.
그 단어를 떠올리기까지, 나는 수없이 나 자신과 실랑이를 벌였다. 이 정도쯤은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오래 알고 지낸 사인데 너무 예민하게 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마음을 달래며 버튼 위에 올린 손을 여러 번 거두었다. 차단은 늘 과한 선택처럼 느껴졌다. 관계를 끊어내는 일은 패배 같았고, 도망치는 일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계속 참고 있는 쪽이 더 많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 순간, 차단은 더 이상 잔인한 선택이 아니라 나를 살려두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가 되었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면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말은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자주 잊힌다. 친해질수록 말은 가벼워지고, 경계는 느슨해진다. 처음에는 웃으며 넘겼던 말들이 조금씩 마음을 긁는다.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던져진 말, 친하니까 괜찮다는 전제 아래 들어온 질문들, 설명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캐묻는 태도. 거절을 웃음으로 흘려보내는 순간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설득하는 사람이 되었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선을 넘는다는 건 늘 거창한 사건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큰 소리도, 노골적인 무례도 아니다.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 아무렇지 않게 던진 메시지 하나가 마음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알림이 울릴 때마다 숨이 먼저 막히고, 답장을 쓰기 전에 이유 없는 피로가 밀려온다. 이쯤 되면 이상하게도, 문제는 항상 나 쪽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예민해서, 내가 여유가 없어서, 내가 너무 깊이 받아들여서. 그렇게 나를 뒤로 미루는 동안, 관계는 점점 더 한쪽으로 기울어 간다.
차단을 결심하게 되는 순간은 의외로 조용하다. 크게 다투고 나서가 아니라, 아무 일도 없던 날에 찾아온다. 메시지 하나에 하루의 기분이 흔들리고, 별것 아닌 말에 오래 마음이 남는 자신을 보게 되는 날. 더 이상 이 대화가 대화가 아니라는 걸, 이 관계가 나를 쉬게 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게 될 때다. 계속 설명해야만 이해받고, 계속 참아야만 유지되는 관계라면, 이미 건강한 선은 사라진 지 오래다.
사람들은 차단을 냉정하다고 말한다. 너무 단호하고, 너무 자기중심적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차단은 상대를 벌주기 위한 선택이 아니다. 차단은 공격이 아니라 방어에 가깝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의 문을 잠시 닫는 일이다. 계속 열어두면 누군가는 허락 없이 들어와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럴 때 문을 닫는 건 무례가 아니라 관리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경계선이다.
관계를 정리한다고 해서, 그동안의 기억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웃었던 시간도, 위로받았던 순간도 그대로 남아 있다. 다만 과거의 다정함이 현재의 무례를 정당화하지 않을 뿐이다. 예전에 잘해줬다는 이유로 지금의 상처를 감내해야 할 의무는 누구에게도 없다. 관계는 추억이 아니라 현재로 유지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를 존중하고 있는지, 그 한 가지가 전부다.
차단 버튼을 누르는 손은 생각보다 무겁다. 마음 한편이 시리고, 혹시 내가 너무 가혹한 선택을 한 건 아닐까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분명해진다. 그 결정 이후로 숨이 조금 편해졌다는 걸, 괜히 휴대폰을 뒤집어 놓지 않아도 된다는 걸, 하루의 감정이 타인의 말 한마디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걸. 그 조용한 평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마음이 드디어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 든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는 법만 배워왔다. 끊어내는 법, 거리를 조절하는 법은 배운 적이 없다. 참는 사람이 성숙하다고, 이해하는 쪽이 어른스럽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모든 이해가 미덕은 아니다. 나를 계속 깎아내리며 유지하는 관계는, 오래될수록 상처만 깊어진다. 관계의 가치는 버텨온 시간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얼마나 안전했는지, 얼마나 존중받았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차단은 끝이 아니다. 이것은 관계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행위가 아니라, 여기 까지라는 선을 긋는 일이다. 이 선 너머로는 더 이상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는 선언이자, 나 자신에게 보내는 약속이다. 이제는 나를 먼저 살피겠다고, 나를 지키는 선택을 하겠다고. 누군가에게는 차갑게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생존에 가까운 결정이다. 마음이 다 닳아 없어지기 전에 스스로를 건져 올리는 일이다.
차단을 선택했다고 해서, 당신이 냉정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오래 참아온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이미 충분히 고민했고, 충분히 버텼고, 충분히 이해하려 애쓴 끝에 내린 결론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선택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관계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인간관계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자리에서 떠나는 것은, 가장 현실적인 용기다.
아무리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도, 서로 존중해야 한다. 그 약속이 깨졌다면 거리를 두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차단은 관계를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라, 나를 가볍게 여기지 않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사람을 만날 때를 위해 남겨두는 여백이기도 하다. 상처가 아닌 평온 위에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기 위해, 오늘 나는 조용히 버튼 하나를 누른다. 나를 지키는 방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