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도 여럿도 아닌, 셋이라는 관계의 온도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된다. 셋이서 모이는 게 흔한 일이 아니라는 걸. 둘이 만나는 약속은 비교적 쉽고, 여럿이 모이는 자리는 누군가가 주도하면 성사되지만, 셋은 늘 애매하다. 한 사람의 일정이 어긋나도 성립하지 않고, 한 사람의 마음이 조금만 비켜가도 미뤄진다. 그래서 셋이서 만나는 날은 우연에 가깝다. 각자의 삶이 잠시 속도를 늦추고, 마음의 여백이 같은 방향으로 열렸을 때에야 가능해진다.
그날도 그랬다. 누구 하나 크게 바쁘다고 말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주 여유롭다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날은 될 것 같아”라는 말이 셋 모두에게서 나왔다. 그 말 하나로 약속은 정해졌다. 우리는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반쯤 만난 기분이 되었다. 셋이서 모이는 약속은 늘 그렇게 시작된다. 확신보다는 가능성으로, 기대보다는 조심스러움으로.
우리가 앉은자리는 창가 쪽 작은 테이블이었다.
메뉴판을 넘기는 손길이 비슷한 속도로 멈췄고, “아무거나 괜찮아”라는 말이 동시에 나왔다. 셋이서 있으면 선택이 느려진다. 누군가의 취향이 다른 누군가에게 불편이 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속도를 맞추게 된다. 그 느림이 이상하게 마음을 편하게 했다. 급하게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말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공기가 있었다.
대화는 천천히 흘렀다. 둘이 있을 때처럼 몰아치지 않았고, 여럿일 때처럼 흩어지지도 않았다. 한 사람이 말을 꺼내면 나머지 둘은 듣는 쪽이 된다. 그 구조가 만들어내는 안정감이 있다. 말해야 할 때와 듣기만 해도 되는 때가 분명해진다. 그날 한 사람은 요즘의 피로를, 한 사람은 지나간 선택을, 또 한 사람은 아직 결정을 미루고 있는 마음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말을 멈췄고, 가끔은 웃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셋이서 웃는 순간은 유난히 선명하다. 누군가 던진 말에 둘이 동시에 웃을 때, 그 웃음은 오래 남는다. 셋 중 하나라도 박자를 놓치면 성립하지 않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웃음에는 묘한 확인이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셋이 함께 보고 있다는 감각. 웃음이 잦아든 뒤에도 테이블 위에는 여운이 남아 있었다. 컵에 남은 얼음처럼, 금세 녹지 않는 온도였다.
우리는 예전 이야기를 잠깐 꺼냈다가 곧 접었다. 그때는 그랬지,라고 말할 수는 있었지만 오래 붙잡지는 않았다. 추억은 셋이서 공유할수록 더 조심스러워진다. 누군가에게는 웃긴 기억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버거운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를 짧게 지나 현재로 돌아왔다. 요즘 자주 먹는 음식, 잠드는 시간, 괜히 미뤄두고 있는 일들. 그런 사소한 이야기들이 오히려 지금의 우리를 더 정확하게 보여주었다.
셋이서 모이면, 각자의 외로움은 조금씩 모양을 바꾼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혼자일 때와는 다른 형태가 된다. 나만 이런가 싶었던 마음이, 아, 다들 비슷하구나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그 변화는 작지만 분명하다. 우리는 서로의 삶을 부러워하지도, 비교하지도 않았다. 대신 각자의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그 정도면 잘 버티고 있다는 판단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눌 수 있었다.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렀다. 접시가 비어 가고, 대화의 간격이 조금씩 늘어날 즈음 누군가 시계를 봤다. 아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또 보자”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꺼냈다. 그 말 뒤에 날짜를 붙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셋이서 모이는 일이 흔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약속은 가볍게 남겨두는 편이 좋았다. 그래야 다음 만남이 부담이 되지 않는다.
가게를 나서며 각자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던 순간, 괜히 집에 바로 가기 싫어졌다. 방금 전까지 함께 있던 온도가 갑자기 흩어지는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셋이서 만나는 관계는 늘 그렇다. 붙잡지 않아도 남고, 자주 확인하지 않아도 흐려지지 않는다.
셋이서 모이는 게 흔한 일은 아니어서, 그래서 더 소중한지도 모른다. 늘 함께하지 않아도, 가끔 이렇게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관계. 서로의 삶을 전부 알지 않아도, 중요한 순간에 떠올릴 수 있는 얼굴들. 그런 관계는 자주 증명하지 않아도 유지된다.
그러니까 우리, 자주 종종 이렇게 셋이서 또 놀자. 거창한 계획 없이, 특별한 이유 없이. 그날의 일정과 마음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셋이서 모일 수 있는 날은 생각보다 많지 않으니까, 가능한 날에는 놓치지 말자.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다시 혼자가 되더라도, 어딘가에는 셋이서 나눴던 느린 대화와 짧은 웃음이 남아 있을 테니까. 셋이서 모일 수 있다는 건, 아직 서로를 잃지 않았다는 뜻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