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국어 앞에서 늘 반 박자 늦어진다

말보다 먼저 숨이 늦어지는 순간

by Helia

외국어 앞에 서면 나는 늘 반 박자 늦어진다. 말이 늦어지는 게 아니라 숨이 늦어진다. 모국어에서는 생각이 먼저 뛰고 말이 따라오는데, 외국어 앞에서는 말이 먼저 서 있고 생각이 뒤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손을 흔들어도 쉽게 켜지지 않는 초록불 앞에 선 기분. 그래서 외국어는 늘 나보다 조금 앞서 걷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따라가고는 있지만 나를 돌아보지는 않는, 속도를 맞춰주지 않는 동행자처럼.

외국어를 처음 배웠을 때, 나는 그 언어를 사람으로 보지 못했다. 교실 안에 놓인 외국어는 문제였고 규칙이었고 점수였다. 빈칸을 채우고, 틀린 문장을 고치고, 발음을 맞추는 일들이 전부였다. 빨간 펜으로 긋는 줄은 늘 내 문장 위에 놓였고, 그 줄은 “아직 아니다”라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읽을 수는 있었지만 말할 수 없었고, 뜻은 알겠는데 감정은 닿지 않았다. 투명한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너머를 구경하는 기분. 나는 외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외국어를 멀찍이서 바라보고만 있었는지도 모른다.

외국어 앞에서 사람은 작아진다. 모국어로는 쉽게 꺼낼 수 있는 말들이 혀끝에서 멈추고, 머릿속에서는 문법이 먼저 떠오르고, 그 사이에서 감정은 점점 자리를 잃는다. 말하고 싶은 마음보다 틀릴까 봐 겁나는 마음이 먼저 나선다. 발음 하나, 어순 하나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 같아서,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된다. 침묵은 가장 안전한 선택이지만, 동시에 가장 먼 거리이기도 하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외국어가 차가운 게 아니라, 내가 그 언어 앞에서 너무 경직돼 있었다는 걸. 외국어를 완벽하게 말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묶고 있었고, 실수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언어를 밀어내고 있었다. 외국어는 틀림을 먹고 자라는 언어인데, 나는 그 먹이를 철저히 끊어버리고 있었다. 그제야 외국어는 시험지가 아니라, 사람 쪽으로 조금씩 얼굴을 돌리기 시작했다.

교재 밖에서 만난 외국어는 달랐다. 화면 속 인터뷰에서, 영화의 대사에서, 노래의 가사에서 외국어는 숨을 쉬고 있었다. 단어를 전부 알아듣지 못해도 괜찮았다. 몇 개의 단어, 하나의 억양만으로도 분위기가 전해졌고, 감정의 방향이 읽혔다.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남아 있어도 대화는 계속됐다. 모국어로도 우리는 늘 오해하고, 엇갈리고, 뒤늦게 알아차리지 않는가. 그렇다면 외국어 앞에서만 완벽을 요구할 이유는 없었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건 다른 삶의 리듬을 잠시 빌려 입는 일과 닮아 있다. 같은 뜻이라도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고, 농담을 던지는 타이밍도, 침묵을 유지하는 길이도 다르다. 어떤 언어는 직선처럼 말하고, 어떤 언어는 한 번 돌아가서 말을 건다. 어떤 언어는 감정을 앞세우고, 어떤 언어는 사실을 먼저 놓는다. 외국어를 조금씩 알게 될수록, 나는 단어보다 그 언어가 선택해 온 태도를 보게 되었다. 세계를 바라보는 각도, 관계를 맺는 방식, 마음을 드러내는 온도. 외국어는 그렇게 나에게 다른 세계의 결을 보여주었다.

외국어가 조금 익숙해진 날, 세상이 갑자기 넓어진 건 아니었다. 다만 닫혀 있던 문 하나가 삐걱 소리를 내며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문틈으로 들어온 공기는 낯설었지만, 분명히 신선했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았다. 이해하려는 태도 자체가 이미 대화였고, 그 대화는 나를 세상 쪽으로 한 발 옮겨 놓았다. 외국어는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기보다, 나를 세계 쪽으로 조금 더 열어주었다.

이상하게도 외국어로 감정을 말할 때, 나는 더 솔직해졌다. 모국어에서는 망설이던 말이 외국어에서는 덜 아프게, 덜 무겁게 흘러나왔다. 언어의 거리 덕분에 감정도 숨을 고를 수 있었던 걸까. 그래서 어떤 고백은 외국어로 할 때 더 담담해지고, 어떤 사과는 외국어로 말할 때 더 정확해진다. 감정이 언어에 눌리지 않고, 언어가 감정을 가리지 않을 때 생기는 묘한 균형. 나는 그 균형을 외국어에서 배웠다.

물론 외국어는 여전히 어렵다. 듣고도 놓치는 단어가 있고, 말하려다 포기하는 문장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외국어를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래 함께 걸어야 할 동반자로 생각하는 자리로. 빨리 말하지 않아도 괜찮고, 유창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말을 걸어보는 용기와, 이해되지 않는 순간을 견디는 인내다. 외국어는 늘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요구한다.

가끔 외국어 문장을 천천히 읽다가, 번역으로는 다 옮길 수 없는 울림을 만난다. 직역하면 어색해지고, 의역하면 사라져 버리는 뉘앙스. 그때 나는 언어가 단순한 전달 수단이 아니라, 감정을 담는 그릇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그릇의 모양이 다르면 같은 물도 다른 방식으로 흔들린다. 외국어는 그 다른 흔들림을 내게 보여주었다.

외국어를 배우며 나는 나 자신을 다시 배웠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사람인지, 어떤 침묵을 견디는 사람인지, 오해 앞에서 어떻게 웃고, 이해 앞에서 어떻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인지. 외국어는 나를 시험하는 언어가 아니라,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낯선 문장 앞에서 더 조심스러워지는 나, 틀린 발음에도 다시 시도하는 나, 이해받지 못해도 끝까지 말해보는 나. 그 모든 모습이 외국어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나는 여전히 외국어를 완벽하게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외국어와 함께 사는 법은 조금 알게 되었다. 서툰 발음으로도 웃을 수 있고, 틀린 문장으로도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 언어는 정확성보다 방향이 중요하고, 유창함보다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 외국어는 나에게 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잘 말하려고 애쓰지 말고, 먼저 말해보라고. 이해받으려 애쓰기 전에, 이해하려는 사람이 되라고.

외국어는 끝내 내 것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완전히 소유하지 않아도, 충분히 함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나는 오늘도 서툰 문장 하나를 입에 올리고, 조금 느린 속도로 세계를 향해 말을 건다. 그 말이 완벽하지 않아도, 그 방향만큼은 분명하다. 잘 말하려 애쓰지 않아도, 이해하려는 쪽으로 한 발 내딛는 순간, 이미 나는 외국어와 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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