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오늘은 사라지지 않기로 한 밤의 기록

흩어지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by Helia

미미는 남겨둔 실 끝을 앞발로 살짝 눌렀다. 풀리지 않게, 그러나 묶이지 않게. 그리고 그 미묘한 균형 속에서 다음 밤이 올 자리를 조용히 밝혀두었다.


그다음 밤은 소리가 먼저 바뀌어 있었다. 말랑숲의 밤은 늘 고요했지만, 그 고요의 결은 매번 달랐다. 오늘은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소리가 길었다. 마치 어디까지 들어와도 되는지, 숲이 스스로 묻는 것처럼. 바느질방의 창은 조금 열려 있었고, 등잔불은 어제보다 낮게 숨 쉬고 있었다. 불빛은 밝히기보다 눌러 두는 쪽을 택한 듯했다.


미미는 바늘을 들지 않았다. 오늘 밤은 손보다 귀가 먼저 움직이는 밤이라는 걸, 공기가 알려주고 있었다. 바느질방 안에는 실의 냄새보다 먼저 기억의 냄새가 스며들고 있었다. 오래 접어 둔 천을 다시 펼칠 때 나는, 아주 희미한 냄새. 한때는 몸에 가까웠고, 지금은 멀어진 것들의 흔적 같은 냄새였다.


여우는 늦게 도착했다. 늦었다기보다, 오래 서성이다 들어온 얼굴이었다. 오늘의 여우는 문턱에서 멈추지 않았다. 대신 방 안 가장자리, 바느질방의 벽 쪽에 조용히 기대 섰다. 기대는 동작이었지만, 의존은 아니었다. 여우의 등은 벽에 닿아 있었고, 시선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오늘은 바늘을 보는 용기가 없었다.


“여기는…”
여우가 입을 열었다가 말을 접었다. 문장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숨과 함께 흩어졌다. 미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대신 바느질방 한쪽에 놓인 천 꾸러미를 앞발로 끌어당겼다. 오늘 꺼낼 천은 어제와 달라야 했다. 어제는 이어야 할 자리였고, 오늘은 내려놓을 자리였다.


미미는 새 천을 펼쳤다. 찢어지지도, 해지지도 않은 천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미미는 알았다. 이 천에는 아직 주름이 남아 있다는 걸. 접힌 채로 너무 오래 있었던 천만이 가지는, 보이지 않는 긴장. 미미는 그 주름을 펴지 않았다. 대신 주름이 어디에 있는지, 앞발로 천천히 짚어 나갔다.


여우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움켜쥐었다. 쥐는 손은 늘 과거를 붙잡고 있었다. 놓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떨어질까 봐. 여우는 그 손을 다시 풀었다. 손바닥에 남은 온기가 아직 식지 않았다. 오늘은 그 온기를 숨기지 않기로 했다.


“나는…”
여우는 다시 말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끝까지 밀어내지 않았다.
“오늘은, 뭘 고쳐야 할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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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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