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
학교 밖으로 나간 지 두 시간이 지나서야, 아이와 민선은 다시 교문을 넘었다.
누군가 발견해 소리칠까 긴장했지만, 모두 수업 중이라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아이의 발끝은 자꾸 멈칫했고, 민선은 줄곧 무표정이었다.
교실에 도착하자 선생님은 없었고, 아이는 자리로 가 가방을 챙겼다.
그 순간, 과학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둘을 바라보는 눈빛은 말보다 먼저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따라와.”
상담실 문은 조용히 닫혔다.
선생님은 책상에 앉아 한참을 말없이 서류를 넘기다가,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성문 써. 각자.”
아이와 민선은 마주 보지 않았다.
아이의 손끝은 느릿하게 펜을 움직였고, 민선은 가만히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침묵은 의자보다 무거웠고, 공기는 납처럼 가라앉았다.
한참 뒤, 아이는 반성문을 선생님에게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았고, 민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민선은 아무 말 없이 백지를 들고일어났다.
단 하나의 글자도 쓰지 않은 채.
선생님의 입술이 일그러졌고, 눈꺼풀이 천천히 감겼다.
그 짧은 숨이, 긴 체념이 되어 방 안에 퍼졌다.
아무도 민선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 누구도 그녀에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듯이.
복도로 나와 걸을 때, 아이는 조심스레 민선 옆에 섰다.
어깨가 닿지 않도록 살짝 떨어져 걸었다.
민선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손을 머리카락으로 올려 넘겼다.
그 순간, 아이는 민선의 손목을 스치듯 보게 됐다.
그 얇은 피부 위에, 옅고도 선명한 흉터.
붉지 않았지만, 깊었다.
이미 아물어버린 상처였지만, 그 자국은 오래 남아 있었다.
아이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민선은 그걸 눈치채지 못한 듯, 그대로 걸어갔다.
“민선아.”
아이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공기보다 묵직했다.
민선은 멈추지 않았다.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걸음을 옮겼다.
아이도 다시 걸었다.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랬구나’라는 말조차 너무 가벼울 것 같았고,
‘왜 그랬어’라고 묻기엔 너무 무거웠다.
그날 이후, 아이는 민선을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언제나 강한 줄만 알았던 민선의 말 없음 속에는,
말해지지 못한 이야기들이 겹겹이 숨어 있었음을,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의 침묵보다
더 크게 울리는 신호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