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고, 덧씌워지고
“이름은… 같지 않은데, 얼굴은 같아.”
민호의 목소리는 낮고 망설임이 섞여 있었다.
아진은 그가 가리킨 모니터를 바라봤다. 병원 전산망의 관리자 페이지였다.
두 개의 파일이 나란히 떠 있었다.
하나는 ‘한서연’. 의뢰인의 본명이 분명했다.
다른 하나는 ‘정윤서’.
“생년월일도 거의 같고… 주소도 유사한데,”
민호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짚었다.
“얼굴이, 너무 닮았어.”
아진은 화면 속 사진을 다시 들여다봤다.
미묘하게 다르지만, 같은 뼈대, 같은 인중, 같은 눈매.
마치—한 사람의 얼굴 위에, 다른 이름이라는 가면을 덧씌운 것처럼.
“이게 무슨 짓이지…?”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안쪽에서 울려 나오는 무거운 감정이 담겨 있었다.
의뢰인의 시술 이력은 그녀의 본명이 아니라, ‘정윤서’라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시술 기록, 입원 날짜, 마취 시간까지 전부 이쪽에 있어.
서연의 이름으로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
“… 이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야.”
아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병원의 전산 시스템 깊숙한 곳,
일반 접근 권한으로는 볼 수 없는 관리자 메뉴에서만 확인 가능한 이력.
누군가가, 서연의 존재를 의료기록에서 지워낸 뒤,
동일한 얼굴의 인물을 ‘정윤서’라는 이름으로 덧입혔다.
“마취 직후 두 시간. 기억이 흐릿해지는 그 틈에,
그녀를 지운 거야. 이름도, 기록도, 존재 자체를.”
아진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서연이라는 사람을 ‘삭제’하고, 그 빈자리에 정윤서라는 인물이 들어섰다.
누구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얼굴은 같고, 신원은 다르며, 기록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상태.
그건 실수가 아니라, 설계였다.
“민호야, 혹시 영상기록은 어때?”
“지금 서버 복원 중이야. 하지만…”
그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며 말했다.
“걱정되는 게 하나 있어.”
“뭔데?”
“이 병원만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
아진의 손끝이 멈췄다.
“만약 이게 개인적인 의료사고나 단독 범행이 아니라면?”
민호가 말을 이었다.
“이 시스템 자체가 외부 조직과 연계되어 있다면, 정윤서란 이름은 단지 그들이 만들어낸 인형일지도 몰라.”
정윤서.
한서연의 얼굴을 하고 있는, 그러나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존재.
그 이름이 권력 아래에 있다면?
그녀를 조작하고 감싸는 누군가가 있다면?
사건의 크기는, 이제 더 이상 탐정사무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진은 뒷걸음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발을 들여놓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문득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다.
사진작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던 시절,
단 한 번의 실수로, 단 한 번의 왜곡된 언론 보도로 인해
그녀는 ‘존재를 지운 사람’이 되었다.
누구도 그녀를 찾지 않았고,
그녀의 이름은 기사 속에서 지워졌으며,
그녀의 얼굴은 대중에게서 잊혔다.
그때 느꼈던 공포.
존재가 사라지는 감각.
“그래서 외면할 수 없어.”
아진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서연이 겪은 일은 나도 겪었어. 그 느낌, 너무 잘 알아.”
민호는 그런 그녀를 말없이 바라봤다.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가보자.”
아진이 말을 이었다.
“가면을 벗겨야 해. 이 이름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밝혀야 해.”
**
사무소 한쪽 벽엔 사건의 흐름을 정리한 메모지들이 가득 붙어 있었다.
붉은 실로 이어진 단어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한서연’
‘정윤서’
‘지하 2층’
‘피부 샘플’
‘관리자 전산 기록’
‘마취 직후 2시간’
그리고 중앙에는 굵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지워진 이름, 덧씌워진 가면.”
민호는 복원 중인 영상 파일의 진행 바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면 말이야… 이거 꼭 실험 같지 않아?”
“실험?”
“응. 누군가의 존재를 지우고, 새로운 존재를 만드는 실험.
그걸 병원이라는 안전한 틀 안에서 아주 정교하게 반복하는 거지.”
“그럼 서연 말고도 다른 피해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거야…?”
민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화면을 가리켰다.
복원된 영상 파일 중 하나가 열리며, 병원 복도 CCTV 장면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화면 속에는 수술복 차림의 여성 두 명이 동시에 걸어가고 있었다.
거의 똑같은 걸음걸이, 비슷한 체형.
하지만 그중 한 명은, 얼굴 전체에 압박 붕대를 감고 있었다.
“이거, 시술 당일이야.”
민호가 말했다.
“두 명?”
“누가 진짜지, 아진?”
아진은 말없이 화면을 바라봤다.
서연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이름은 정윤서로 등록된 여자,
그리고 얼굴을 붕대로 감싸고 있던 또 다른 여자.
혹시… 그 붕대 아래엔 ‘진짜’ 서연의 얼굴이 있었던 걸까?
가면은 꼭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다.
때로는 이름이, 때로는 기록이, 그리고 때로는 침묵이
가면이 되기도 한다.
아진은 느릿하게 숨을 내쉬었다.
“우린, 이제 가면의 무게를 들여다봐야 해.”
그리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사라진 이름들의 그림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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