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이름, 빼앗긴 삶
밤이 깊어가고, 탐정사무소의 불은 꺼질 줄 몰랐다.
아진은 병원에서 몰래 복사해 온 자료들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 메모지와 펜을 들었다. 커피는 어느새 식어 있었고, 종이 위에 흐릿한 빛을 드리운 스탠드 불빛 아래, 그녀의 손끝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진료기록. 신분증. 병원 시스템에서 내려받은 진료 로그 내역.
모두가 정확하고 말끔해 보였다. 지나치게, 수상할 만큼.
아진은 다시금 의뢰인이 건넨 신분증 사본을 꺼냈다.
‘지연’. 분명 의뢰인의 이름이 맞았다. 생년월일도, 주소도 모두 일치했다.
그런데—
“며칠 전 진료기록이 있네... 그런데 시술 당일 기록은?”
모니터에 뜬 병원 전산망의 기록창.
최근 방문자 내역에는 ‘지연’이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시술이 이루어졌던 날짜에는 공란이 찍혀 있었다. 진료 예약도, 수술 보고서도, 시술 동의서도. 마취에서 깨어났다는 그날, 그 시간엔 아무 흔적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오히려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아진은 기록들을 하나하나 되짚었다. 병원 로그에서 발견한 ‘지연’이라는 이름 아래엔 다른 여성의 사진이 떠 있었다.
분명히 동일한 이름인데, 전혀 다른 인물. 피부 톤도, 얼굴형도, 눈매도 달랐다.
“같은 이름, 다른 사람...?”
그녀는 기록을 인쇄해 두고, 의뢰인이 건넨 얼굴 사진과 병원의 시스템 캡처본을 번갈아 보며 비교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누군가가 ‘지연’이라는 이름을 도용해, 완전히 다른 사람의 진료기록을 만들어냈다.
기록은 존재하지만, 그 몸은 의뢰인의 것이 아니었다.
“이건... 정체를 바꿔치기한 거야.”
그녀는 천천히 등을 기대고 의자에 몸을 묻었다. 심장이 미세하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만들어진 삶.
그것은 단순한 의료사고가 아니었다.
그 순간, 아진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기억이 스쳤다.
의뢰인이 깨어났을 때, 병원 직원들이 그녀를 모른다고 했다. 이름도, 예약도, 시술도 없었다고.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했던 그들의 태도.
그때는 단순한 병원의 착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 그건 연극이었어.”
누군가의 정체성을 지우고, 다른 인물로 대체하려는 계획적인 연극.
그녀의 존재를 부정하고, 또 다른 ‘가짜’를 만들어낸 조작.
아진은 벌떡 일어나 병원 구조도를 꺼냈다.
지하 2층. 공식 기록엔 존재하지 않는 그 층.
그곳엔 평범한 병원이 가질 리 없는 수술 기구들이 놓여 있었고, 보관된 피부 샘플은 무언가를 증명하듯 아찔한 기시감을 불러일으켰다.
‘누군가 이곳에서 신체 이식 실험을 하고 있었어.’
머릿속에서 가능성들이 요동쳤다.
DNA 조작? 생체 이식?
그녀의 이름을 빌려, 다른 인물을 만들어내는 일.
그리고 그 인물은—의뢰인의 삶을, 존재를 대신해 살아가고 있었다.
“지연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지금 두 명이야.”
하나는 이름을 빼앗긴 채 노인의 얼굴을 하고 떠돌고 있고,
다른 하나는 젊고 말끔한 외모로, 의뢰인의 삶을 대신 살아가고 있다.
아진은 벽에 붙은 메모지들을 바라보았다. ‘가짜 진료기록’, ‘지하 2층 실험실’, ‘사라진 얼굴’… 그 메모들의 중간에서 붉은 선으로 이어진 단어 하나가 있었다.
‘지워진 이름’
이건 그저 종이에 적힌 단어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조심스레 휴대폰을 들어 민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민호, 병원 시스템 로그 기록에서 최근 관리자 권한 접근 시간대 추출해 줘. 그리고 ‘지연’이란 이름으로 등록된 환자 파일을 외부에서 열람한 흔적도 확인 필요.”
몇 분 후, 민호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
> “오늘 새벽 2시 14분. 관리자 권한 접근 기록 있음. 접속자는 ‘이재성’이라는 내부 연구원. 그 외 ‘지연’ 파일은 최근에만 두 차례 외부에서 열람된 기록이 있어. 아이피는 병원 내부망이 아니야.”
아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재성’—지하 2층에서 마주쳤던, 눈빛이 서늘했던 연구원.
그리고 외부 접속? 병원 외부에서 누군가가 ‘지연’의 정보에 접속하고 있었다는 건, 이 사건이 단순히 병원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 아님을 의미했다.
‘밖에도 공모자가 있다... 아니, 더 큰 조직이.’
그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이건 단순한 신원 도용 사건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존재를 완전히 ‘삭제’하고, 새로운 존재로 대체하려는 삶의 이식 실험.
그때, 문득 아진은 자신이 매장되었던 과거를 떠올렸다.
사진작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던 그녀는, 단 한 번의 회식 자리에서의 실수가 와전되어 사회적으로 매장당했었다.
기억하는 사람도 없고, 그녀의 존재를 다시 거론하는 사람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그 감정이, 지금 의뢰인의 상황과 겹쳐졌다.
존재했던 흔적이 완전히 지워지고, 그 자리에 다른 누군가가 서 있는 느낌.
“이번엔...”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지켜내야 해.”
벽에 걸린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무소의 유리창 밖으로는 어슴푸레한 빛이 번지고 있었고, 그녀의 메모지 위에는 여전히 네 글자가 선명히 남아 있었다.
‘지워진 이름’
그리고, 그 이름을 되찾기 위한 추적이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