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장. 이유 같은 건 없어

이유 같은 건 없어, 그냥 네가 싫어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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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édéric Chopin – Prelude in E minor, Op. 28 No. 4

어떤 말은 오랫동안 가슴속에 남아 있다.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문장이 있다. 마치 흉터처럼, 사라지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남아 삶의 결을 조금씩 바꾼다.

중학생 시절, 나는 말없이 조용한 아이였다. 튀지 않았고, 무리에 섞이는 데도 서툴렀다. 늘 책을 들고 다녔고, 점심시간엔 교실 창가에 ㄱ앉아 밖을 보곤 했다. 그것이 이유였을까. 아니면 웃음이 많지 않아서였을까. 내 행동 하나하나에 딴지를 거는 아이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나는 이유도 모른 채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무리에서 나를 배제하는 수준이었다. 함께 가던 급식줄에서 내 자리를 슬쩍 밀어내고, 체육 시간엔 짝이 없다고 외면했다. 그다음은 말없는 손가락질과 노골적인 험담. 누가 시작했는지도 모른 채 나는 점점 교실에서 투명한 존재가 되어갔다. 투명하다는 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고, 보이지 않는 사람은 없는 사람과 같다. 없는 사람에게는 상처를 줘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어느 날, 책상 속에 있던 필통이 사라졌고, 대신 낙서로 가득한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너만 없으면 돼.”라는 문장이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선생님에게 말할 용기도, 집에 알릴 용기도 없었다. 누구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은 이상하게도 확신처럼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시절, 나는 하루하루를 버틴다는 감각으로 살았다. 숨을 쉰다기보다 참는다는 느낌이 더 가까웠다. 울고 싶었지만 울 수 없었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지만 그럴 사람이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결국, 참다못해 그중 주동자에게 물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눈물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있었고, 목소리는 떨렸다. 하지만 마지막 자존심이 남아 있었기에, 떨리는 음성 너머로 반드시 이유를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

“이유 같은 건 없어. 그냥 네가 싫어.”

말문이 막혔다. 수많은 질문이 목 뒤에 매달린 채 툭 떨어졌다. ‘그냥’이라는 말이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유 없는 미움의 대상이었고, 그 사실은 나를 산산이 부수었다. 잘못한 게 없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더 큰 상처였다. 내가 잘못한 게 있었다면, 고치거나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유가 없다면, 나는 앞으로도 반복해서 그런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교실은 더 차갑게 느껴졌고, 친구를 만들 용기도 사라졌다.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만 느껴도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러다 보면 또 이상한 아이 취급을 받게 되고, 그게 또 다른 고립을 낳았다.

시간이 흐르고, 학창 시절은 지나갔다. 겉보기엔 멀쩡한 어른이 되었고, 사람들과도 무리 없이 어울리는 척을 했다. 하지만 내 안엔 여전히 ‘그냥 미움받았던 아이’가 살아 있었다. 사람들의 눈빛에 쉽게 움츠러들었고, 사소한 무시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관계 속에서 내가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늘 먼저 달려와 나를 조용히 밀어냈다.

성인이 된 지금, 그 아이의 말이 종종 떠오른다. 이유 같은 건 없다는 말. 그리고 그냥 싫다는 선언.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 아이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받았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미움은 자라서 또 다른 미움이 되고, 상처받은 사람은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말이 나를 덜 아프게 하진 않는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미움이란 감정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걸까. 왜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이유 없이 싫어할까. 아니, 정말 이유가 없는 걸까. 혹시 그 이유가 너무 사소해서, 혹은 말로 설명할 수 없어서 ‘그냥’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것은 아닐까.

“이유 같은 건 없어. 그냥 네가 싫어.” 그 문장은 사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사람의 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잔인하다. 말은 했지만,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말은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내 존재 전체를 부정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미움받을 이유가 없어도 미움받을 수 있고, 사랑받을 이유가 없어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타인의 감정에 휘둘려 내 존재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