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연결된 조각들

조용한 감시의 기록

by Helia

"내 이름이... 있었다고?"

아진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정적 속에서, 민호는 바닥만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창고 안의 형광등이 윙 하고 울리는 소리만이 둘 사이를 메웠다. 낡은 선풍기, 먼지 낀 파일 뭉치, 그리고 그녀의 이름이 적힌 그 한 장의 문서. 그 모든 것이 세상을 거꾸로 돌려놓고 있었다.

"처음엔 정말 몰랐어요. 그냥, 병원 시스템에 누가 불법적으로 접근했는지 조사하는 일이었어요."

민호의 말은 해명이자 간절한 진심 같았다. 하지만 아진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안에 선배 이름이 떴어요. 삭제된 의료기록들 사이에서요. 선배 사진도 있었고… 영상도 있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한 선배가 선배한테 대드는 장면. 병원 서버 안에 실시간 감시 자료처럼 저장돼 있었어요."

아진은 숨이 가빠왔다. 그날의 일이 어째서 병원과 연결되어 있는지, 왜 누군가가 자신을 낙인찍고 사회적으로 매장했는지, 모든 퍼즐 조각이 그제야 끼워지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한 신분 세탁이 아니야. 사람 하나를 지우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심는… 완벽한 교체. 그리고 그 실험 대상 중 하나가… 나였던 거네."

민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한 동작이 아진의 내면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왜 나였지? 왜 하필이면 나야?"

"폴더명이 '실험 대상 군 C'였어요. 그 안에 선배 말고도 셋이 더 있었습니다. 연예인 하나, 자살한 정치인의 아들, 그리고…"

민호는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USB 하나를 꺼내 아진에게 건넸다.

"이 안에 있어요. 선배가 직접 확인해봐야 할 것들이요."

아진은 USB를 움켜쥐고 창고를 나섰다. 해가 기울고, 병원 뒤편 주차장 너머로 간판 불빛이 켜졌다. 그리고 동시에,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누가 따라오고 있어요."

두 사람은 숨을 죽이고 어두운 골목길로 몸을 숨겼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병원 창고를 지나쳐 간 뒤에야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그날 밤, 아진은 민호와 따로 떨어져 모텔에 투숙했다. 방 안의 조명은 어둡고, 가습기 소리는 무겁게 깔려 있었다. 그녀는 노트북에 USB를 꽂고 파일을 열었다.

첫 폴더엔 '재기 불가능'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다. 파문을 일으킨 공인들, 신용불량자, 실종자들. 그 가운데 또렷하게 쓰인 이름.

'류아진'

“기록된 인물. 사회적 파문 발생. 이미지 훼손. 대상 삭제 필요.”

그 아래엔 또 다른 이름이 있었다.

'조민호'

아진은 숨을 삼켰다. 이번엔 민호가 대상이었다. 누군가, 이 모든 것을 설계하고 있었고, 다음 희생자는 민호였다.

파일을 넘기던 아진의 손이 멈췄다. ‘기획자’라는 폴더 안에, 병원 원장과 모종의 회의를 하던 인물의 영상이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실루엣. 그리고 불분명한 화면 속에서 아진은 놀라운 사실을 확인했다.

그 인물은, 그녀가 한때 존경했던 유명 언론사 대표였다. 바로 그녀를 해고한 그 사람이었다.

"이건… 전부 계획된 일이었어."

모든 조각들이 끼워지고 있었다. 병원, 언론, 정치, 연예계. 연결된 조각들이 드러나면서, 아진은 이 싸움이 이제 개인의 복수나 정의의 문제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것은 시스템 전체를 상대로 한 전면전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녀 자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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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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