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정의, 그리고 시작된 혁명
차가운 새벽 공기가 더는 살갗을 파고들지 않았다. 부서진 노트북과 흩어진 서류들, 그리고 붉게 타오른 경고등이 꺼진 자리에서 아진과 민호는 말없이 서 있었다. 무릎을 꿇은 채 제압당한 류성민, 그리고 그 곁에 흩어진 정장 차림의 남자들. 이 모든 혼돈이 단 몇 분 만에 정리됐다. 그들을 덮친 정체불명의 조직—‘JD’. 형체조차 분명치 않았던 그들은, 말 한마디 없이 나타나 상황을 제압하고는 마치 연기처럼 사라졌다.
“누나… 방금 그 사람들, 대체 뭐야?” 민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발목을 묶고 있던 테이프 자국을 바라보다,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아진은 대답 대신 손목을 감싸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손목, 거기에는 ‘JD’라는 알파벳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는 상황 속,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들이 적이 아니라는 사실 뿐이었다.
“우릴 구했어. 그것만은 확실해.” 아진은 부서진 노트북 옆에 흩어진 USB를 다시 집어 들었다. 파손된 기기 위에도, 영상 송출 상태를 알리는 희미한 붉은 불빛이 남아 깜빡이고 있었다.
멀리서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JD’가 남긴 흔적과도 같았다. 그들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방식으로, 가장 필요한 순간에만 움직였다. 아진은 민호의 손을 잡고 공장을 빠져나왔다. 갈라진 콘크리트 틈새로 서서히 아침 햇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뉴스는 그날 아침부터 혼란과 충격으로 뒤덮였다.
[속보] 류성민 의원, 생체 전이 실험 주도 혐의로 긴급 체포!
[단독] ‘Project: 오버로드’ 연루자 명단 공개… 의료계‧재계 인사 포함
[여론] “인간 존엄성 짓밟은 반인륜 범죄, 철저히 수사해야!”
그들이 송출한 영상은 각종 방송국과 포털 사이트를 점령했다. 김영자 할머니의 중얼거림, 이소진의 절규, 그리고 류성민의 비열한 협박이 담긴 영상은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대한민국은 격렬한 격동 속으로 진입했다. 인간 실험이라는 끔찍한 단어는 뉴스 자막 위를 끊임없이 흘렀고,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이 혹시 전이 실험의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불안에 휩싸였다.
아진과 민호는 외곽의 한 은신처에 몸을 숨기고 뉴스를 지켜보았다.
“누나, 우리… 진짜 해낸 거죠?” 민호는 지친 얼굴 위에 미소를 띠었다.
“응.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야.” 아진은 노트북 화면 속 영상을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 “진실을 드러낸 건 시작일 뿐. 이제 바꿔야 해. 이 나라가 외면한 진짜 시스템을.”
그때, 윤 형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두 사람을 안전 가옥으로 이끌었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경찰차들이 바삐 움직였고, 언론은 현장을 에워싸며 숨죽인 전쟁을 중계하고 있었다.
“아진 기자님, 민호 군.” 윤 형사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두 분 덕분에 대한민국이 오래도록 외면해 온 악을 제대로 마주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하나 있어요.”
“설마 ‘JD’?” 아진이 조심스레 물었다.
윤 형사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류성민 일당을 먼저 파악하고 움직였는지 아무런 기록도 없습니다. CCTV도, 통신기록도 전부 비어 있어요.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같아요.”
아진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희도 정확히는 몰라요. 다만… 그들이 우릴 도왔어요.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윤 형사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사는 지금 급물살을 탔습니다. 류성민 의원 외에도 연루된 인사들 전원 수사 예정입니다. 김영자 할머니 같은 피해자들도 국가의 보호를 받게 될 거고요.”
아진은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소진, 김영자, 그리고 수많은 이름 없는 피해자들.
그들은 더 이상 잊힌 존재가 아니었다.
며칠 후, 아진과 민호는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들의 폭로는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국회는 ‘생명윤리 보호법’ 개정안을 긴급 심의에 돌입했다. 대기업 후원 병원들의 재검토, 국정조사 착수, 의료기관들의 전수조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그 찬란한 조명 아래서도, 아진은 마음 한구석의 그림자를 떨쳐낼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름. ‘JD’.
그들은 누구이며, 왜 자신들을 도운 것일까? 단순한 정의감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목적이 있었을까? 그녀는 모니터를 응시하며 문득 떠오른 손목의 문신을 떠올렸다.
JD.
이제 그것은 그녀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세상은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변화의 그림자 뒤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손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진은, 언젠가 다시 마주칠 그 그림자를 향해 조용히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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