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등을 밀지 말 것
실내 수영장.
하얀 타일 벽에 물방울이 튀고, 푸르른 수면 위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맴돌던 어느 여름날의 기억.
나는 그날, 죽을 뻔했다.
내가 먼저 원한 건 아니었다. 그저 이웃집 언니가 수영장에 데려가 줬고, 미끄럼틀을 함께 타자고 해서 따라간 것뿐이었다. 물이 무서웠지만, 언니가 있어서 괜찮을 줄 알았다.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 꼭대기에서 심호흡을 하던 찰나였다.
뒤에서, 툭.
언니가 내 등을 밀었다.
몸이 중심을 잃고 기울었다.
그 짧은 순간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길었다.
나는 발버둥 쳤고, 허우적댔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실내 수영장은 웃음과 소음으로 가득했고, 그 누구도 내 조용한 비명을 듣지 못했다.
숨이 차오르던 그 순간, ‘나는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의 손에 의해 건져 올려졌고, 나는 살아났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나는 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에게 등을 맡기는 일도, 그다지 잘하지 못하게 되었다.
청춘 익사 사건이라는 뉴스를 들었을 때, 나는 그날의 수영장 냄새부터 떠올렸다.
언젠가의 나처럼, 누군가도 준비되지 않은 채 깊은 물속으로 밀려 들어갔을 것이다.
그가 발버둥 치며 뻗었던 손, 마지막까지 버텨보려 했던 의지, 살고 싶다는 간절함은 기사엔 남지 않는다.
뉴스는 말한다.
"구조에 실패해 사망 확인."
"수영 미숙 추정."
"장난치다 실족."
이 짧은 문장들이 얼마나 많은 감정과 상황을 지워버리는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요즘의 청춘들이 늘 물에 잠긴 채로 산다고 생각한다.
생존 수영이 아니라, ‘생존 청춘’을 배우고 있다.
수업료는 불안이고, 과제는 증명이다.
더 나은 삶을 향해 끊임없이 허우적거리지만, 물은 점점 깊어지고, 숨은 점점 가빠진다.
누구나 말한다.
“청춘이니까 버텨야지.”
“다 그런 시절이 있었어.”
그 말들이 건네는 무심함에 우리는 더 고요히 침몰해 간다.
물속에서 손을 뻗어도, 누구도 잡아주지 않는다. 왜냐면, 그들도 똑같이 잠겨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익사라는 단어가 물리적인 죽음만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존감이 익사하고, 관계가 익사하고, 꿈이 익사한다.
그리하여 마지막엔 살아남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무언가를 잃고 떠오른 채 살아간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어릴 적 그날, 언니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나는 왜 밀었는지 묻지 못했다.
"미안"이란 말 한마디 없이 돌아선 언니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엄마에게도, 친구에게도.
마치 내가 오히려 유난스러운 아이가 될까 봐.
그건 참 오래 남는다.
내가 과장되게 굴었나? 내가 잘못 기억하는 건가?
그렇게 스스로의 진실을 의심하게 되는 것.
그런 경험들이 우리를 점점 물속으로 끌어내린다.
청춘도 그렇다.
살고 싶다고 외치는 목소리가, ‘관종’이라거나 ‘예민하다’는 말로 무시될 때.
그 말들은 등 뒤에서의 또 다른 ‘밀침’이 된다.
익사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물에 들어갔을까?
혼자였대?
부주의했겠지.
우리는 늘 원인을 희생자에게 묻는다.
살아남은 자들의 안도를 위해, 누군가를 쉽게 탓할 대상을 삼는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대부분의 익사는 외부에서 밀려난 결과라는 것을.
누구도 고의로 죽고 싶어 하진 않는다.
그는 살고 싶었을 것이다.
다만, 손 내밀었을 때 붙잡아 줄 누군가가 없었을 뿐이다.
어릴 적의 나는, 물속에서 두려웠다.
숨이 차올라 이대로 끝일 것 같았고, 다신 엄마 얼굴을 못 볼 것 같았고, 그저 모든 게 너무 빨랐다.
그리고 그 감정은, 의외로 자라서도 자주 되풀이되었다.
사회에 나가면서, 사람 사이에서,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기대에 짓눌리고, 사랑에 가라앉고.
나는 여러 번 익사했다.
다만 운이 좋게, 아주 조용히,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었을 뿐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묻는다.
혹시 누군가, 오늘도 물속에 있지는 않을까.
조용히 손을 뻗고, ‘살고 싶다’고 속삭이고 있진 않을까.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 신호를 놓치는가.
그리고 얼마나 자주, 그저 지나쳐왔는가.
어쩌면 가장 큰 익사는, 죽음이 아니라 잊힘일지도 모른다.
기억되지 못한 감정, 말해지지 못한 이야기.
조용히 무너지고, 다시는 떠오르지 않는 이름들.
그렇기에 나는 오늘, 한 사람을 떠올린다.
그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어느 여름날, 강물 속으로 사라졌던 그 청춘을.
그리고 그를 닮은 수많은 청춘들을.
그리고 언젠가의 나까지도.
이제는 묻고 싶다.
우리는 서로를 밀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누군가의 등을 붙잡아 줄 준비는 되어 있는가.
그건 거창한 것이 아니다.
말 한마디, “너 괜찮아?”라는 질문.
말없이 건네는 손.
뒤돌아보는 눈빛.
그것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그 언니에게 묻고 싶다.
왜 그랬는지, 아니라면 왜 아무 말도 안 했는지.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묻고 싶다.
왜 그렇게 오래, 그 일을 나 혼자만의 잘못으로 간직해 왔는지.
물속은 늘 조용하다.
누가 울고 있는지도, 버티고 있는지도, 알아차리기 어렵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도 반드시 이야기가 있다.
그러니 이 글이,
지금 물속에서 조용히 손을 뻗고 있는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기를.
한 사람이라도, 그 손을 붙잡아줄 수 있기를.
그리고 당신이 바로,
그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 중 하나이기를.
우리는 아직, 살아 있다.
그리고 기억하고 있다.
당신이 잠겨 있던 시간을.
내가 가라앉았던 그 여름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