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열고 마주한 얼굴
나는 오랫동안 나를 숨겼다.
사람들 틈에선 환한 웃음을 걸치고, 마음 한쪽에선 문을 걸어 잠갔다. 속이 울퉁불퉁하게 갈라져도, 표면은 매끄럽게 다듬었다. 거울 속 얼굴은 늘 다른 사람 같았다. 화장이 번진 눈가, 억지로 올린 입꼬리, 눈빛에 가라앉은 탁한 물결. 그 안에 오래 눌러둔 진짜 표정이 있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는 말은, 벽에 걸린 액자 속 문구처럼 반짝이지만, 막상 손에 잡으면 차갑고 묵직하다. 지금의 내 모습엔 울퉁불퉁한 결, 긁힌 자국, 닫힌 흉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모든 것을 드러내는 건, 두 손을 빈 채로 어두운 무대에 서는 것과 같다.
한동안 나는 껍질 속에 살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자리에서는 무늬 좋은 가면을 쓰고, 혼자일 땐 벗어두었다. 하지만 그 가면은 오래 쓰면 무거워졌다. 웃는 표정이 오래 지속되면 근육이 먼저 비명을 질렀고, 꾸며낸 말은 밤마다 가슴 위에 돌처럼 얹혔다. 하루가 끝나면, 눈꺼풀보다 마음이 먼저 내려앉았다.
변화의 순간은 소리 없이 왔다.
퇴근길, 지하철 창에 비친 얼굴이 희미하게 얼룩져 있었다. 유리 위 성에가 내 숨결에 따라 뿌옇게 피어올랐다 사라졌다. 초점이 흐려진 눈동자와 축 처진 어깨가 한 폭의 그림처럼 고정됐다. 그때, 알았다. 이 얼굴을 가장 오래 본 건 나인데, 그 누구보다 무심했다는 걸. 그리고, 나만큼 나를 날카롭게 대했던 이도 없었다는 걸.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문을 열었다. 피곤하면 숨을 고르고, 서운하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솔직해지는 건 상처 난 피부를 햇볕에 내놓는 일과 닮아 있었다. 빛이 닿으면 쓰라리지만, 그 열이 새살을 틔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건 오래 잠겨 있던 창을 활짝 여는 일이다. 실내에 고인 공기가 한순간에 빠져나가고, 차가운 바람이 몰려든다. 그 바람 속엔 먼지도 섞여 있지만, 먼지마저 바깥의 일부다. 나는 그것까지 들였다.
사람 사이에서도 변화가 일었다. 예전엔 다투기 싫어 맞춰주고, 불편한 감정을 삼켰다. 표면은 고요했지만, 속은 파도가 부딪쳤다. 그 파도는 오래 참을수록 높아져, 어느 날 한꺼번에 무너졌다. 반대로, 가면을 벗고 드러낸 관계는 단단했다. 서툴고, 모난 모습을 보아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곁에서 나는 처음으로 숨을 고르게 쉬었다.
있는 그대로라는 건 멈춤이 아니라 출발이다. 자기 발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알아야, 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거울 속 나를 부정한 채 앞으로 가면, 길은 쉽게 휘어진다. 현재 위치를 찍는 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이제 나는 거울 앞에서 오래 선다.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얼굴, 웃음이 드문 날의 입매, 더 이상 감추지 않는 주름. 그 얼굴은 나의 궤적이고, 살아온 계절들이다. 거짓이 벗겨진 얼굴엔 이상하게 편안한 기운이 흐른다. 숨을 참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거기 있었다.
바다는 날씨에 따라 표정이 바뀐다. 잔잔하면 잔잔한 대로, 거칠면 거친 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하늘도 마찬가지다. 구름이 몰려오면 그림자를 드리우고, 맑으면 햇살을 뿌린다. 어느 쪽도 억지로 변하려 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여전히 불안하다. 어떤 날은 다시 가면을 쓰고 싶어진다. 사람들의 기대에 맞추는 게 덜 힘들어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안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숨을 고르고, 다시 창을 연다.
있는 그대로라는 건 나를 무조건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지금의 나를 미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 순간부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더 이상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변화를 향한 첫 발자국이 된다.
아마 당신도 가면을 벗지 못한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억지웃음을 지으며 속으로는 울고 있던 날, 말끝에서 삼킨 진심. 괜찮다. 나도 그랬으니까. 우리는 모두 조금씩 벗고 있는 중이다.
오늘 거울 속의 나에게 속삭인다.
“괜찮아. 너는 이 모습으로도 충분해.”
그리고 그 말이 오늘 하루를 버틸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