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일

쓰는 일은, 나를 붙잡는 일

by Helia

쓰는 일은, 심장이 남긴 맥박을 종이에 새기는 일이다. 펜촉 끝에서 번져나가는 그 박동이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며, 이야기가 된다. 쓰는 순간만큼은 세상과 단절된 듯 보이지만, 실은 누구보다 세상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단어들이 다리가 되고, 문장들이 길이 되어 나와 세계를 이어준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저 기록하고 싶어서 썼다. 나를 스친 장면들, 잊히기 전에 붙잡아두고 싶은 대화들,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들을 종이에 옮기면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그 시절의 글쓰기는 오직 나를 위한 일기와 같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사적인 기록이 누군가에게 건너가 읽히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글쓰기는 나와 타인의 거리를 잇는, 조금 더 공적인 행위가 되었다.

쓰는 일은 단순히 손의 움직임이 아니다. 단어를 고르고, 쉼표 하나를 어디에 둘지 망설이는 동안, 내 안에서는 오래 묻혀 있던 기억과 감정이 천천히 몸을 뒤튼다. 기쁨과 슬픔만 있는 게 아니다. 어떤 문장은 상처를 건드리고, 어떤 문장은 잊었던 웃음을 깨운다. 나는 글을 쓰다가 자주 창문을 연다. 바람이 들어와 종이 귀퉁이를 흔들면, 머릿속에서 굳어 있던 문장도 서서히 풀린다. 부엌에서 끓는 커피 냄새가 스며오면, 단어의 색감마저 달라진다. 맑은 날엔 문장이 가볍게 흘러가지만, 비 오는 날엔 문장이 느리고 묵직해진다. 글쓰기는 기다림이다. 단어 하나가 떠오르길, 문장이 제 발로 걸어 나오길 기다린다. 그 기다림은 때로 고문 같지만, 결국 선물처럼 찾아온다.

나는 종종 글을 밧줄에 비유한다. 무너질 듯한 마음 위로 얇지만 단단한 줄 하나를 던져주는 일. 그 줄을 잡고 조금씩 올라오다 보면 발아래가 안전해진다. 누군가는 그 줄을 타고 오르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 줄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얻는다.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그런 줄이 되면 좋겠다. 그러나 밧줄을 만드는 일은 고독하다. 아무도 대신 엮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독은 텅 빈 방이 아니라, 수많은 목소리와 얼굴, 풍경으로 가득 찬 방이다. 그들이 떠드는 소리를 받아 적다 보면 고독은 점점 온기로 변한다.

쓰는 일은 내 삶의 결을 바꿔놓았다. 상처를 다루는 법, 기쁨을 오래 붙잡는 법,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을. 쓰기를 멈추면 나는 금세 흐릿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한 문장을 쓴다.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속 쓰기 위해서. 완벽해질 날을 기다리다 보면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 완벽함보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이다. 가끔은 글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 다 쓰고 나서야, 아, 내가 이런 마음이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나는 쓴다. 아직 모르는 나를 만나기 위해서.

쓰는 일에는 고통이 따른다. 마음속에 오래 눌러둔 이야기를 꺼내면, 그것이 다시 나를 찌르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쓰는 일은 치유다. 그 고통을 글자 속에 담아두면, 더 이상 그것이 나를 삼키지 못한다. 나는 내가 쓴 문장을 읽으며, 거기서 벗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글이 나를 구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더라도, 쓰는 순간만큼은 내가 나를 붙잡아주는 셈이다.

어떤 날은 단어들이 줄줄 흘러나와 손이 따라가기 버거운데, 또 어떤 날은 머릿속이 빈 창고처럼 휑하다. 쓰고 싶지만 쓸 수 없는 날에는 괜히 연필을 깎고, 종이를 갈고,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는다. 그러다 보면 단어 하나가 불쑥 떠오르고, 그 하나가 문장이 되고, 문장이 이야기가 된다. 글쓰기는 결국 기다림의 예술이자, 스스로를 향한 신뢰다.

쓰는 일은 결국 사랑이다. 사람을, 순간을, 나 자신을. 사랑하니까 기록하고, 사랑하니까 남기고, 사랑하니까 잊히지 않기를 바란다. 언젠가 내가 쓴 글들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나는 계속 쓸 것이다. 쓰는 동안만큼은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오늘도 책상 위엔 한 장의 빈 종이가 놓여 있다. 창밖에서는 바람이 커튼을 살짝 건드린다. 나는 그 위에 조심스레, 그러나 두려움 없이 첫 문장을 얹는다. 그것이 내 하루의 시작이자, 가장 솔직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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