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서에 찍히지 않는 선물
어느 날, 계산서에 찍히지 않은 선물이 내 앞에 놓였다. 주문하지 않은 케이크 한 조각, 말 대신 미소로 전해진 작은 호의. 주인은 짧게 말했다. “It’s on the house.” 순간, 그 말은 단순히 ‘공짜’라는 뜻을 넘어, 낯선 도시 한가운데서 나를 환영하는 문처럼 느껴졌다. 달콤한 맛보다 더 진하게 남은 건,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따뜻함이었다.
삶은 대개 교환의 원칙으로 움직인다. 카드를 찍어야 버스를 타고, 돈을 내야 물건을 얻는다. 기쁨조차도 어쩐지 대가를 요구하는 듯하다. 그런데 때때로, 전혀 계산되지 않은 순간이 불쑥 다가온다. 그것은 꽃잎이 바람에 실려 어깨에 내려앉듯,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우리를 감싼다.
한 번쯤은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다. 뜻밖에 건네받은 휴지 한 장이 눈물을 닦아주고, 낯선 이의 자리 양보가 긴 하루를 버티게 하며, 무심히 집어 든 책 속 한 문장이 오래된 상처를 어루만진다. 그런 순간은 ‘It’s on the house’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세상은 여전히, 이유 없는 선물을 건넬 줄 안다는 증거다.
받는 입장에서만 머물지 않고, 우리는 언젠가 스스로 그런 순간을 흉내 낸다. 버스 정류장에서 헤매는 이를 향한 자세한 길 안내, 친구의 음료값을 함께 건네는 사소한 결제, 피곤한 동료에게 남긴 짧은 쪽지 한 장. 계산서에는 남지 않지만, 마음의 기억에는 오래 새겨지는 행위들이다. 어쩌면 세상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친절들이 서로에게 흘러 들어가며 유지되는지도 모른다.
공짜라는 말은 흔히 값어치 없는 것으로 오해되지만, 진짜 ‘공짜’는 가장 비싼 형태의 마음이다. 조건이 없기에 더 순수하고, 억지로 얻을 수 없기에 더 귀하다. 사람들은 각박할수록 오히려 이런 ‘무상의 미학’을 갈망한다. 단 한 마디, “It’s on the house.”라는 말속에 숨어 있는 환대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위로다.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나를 붙잡아 준 것은 거대한 성공도, 두툼한 지갑도 아니었다. 길을 잃고 헤매던 날, 내 앞에 조용히 놓였던 케이크 한 조각, 계산 없이 건네진 미소, 불쑥 다가온 친절의 순간. 그 모든 것이 내 삶의 가장 빛나는 기억으로 남았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언젠가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It’s on the house’를 건네고 싶다고. 그것이 꼭 물질일 필요는 없다. 따뜻한 눈빛, 진심 어린 대화, 귀 기울여 들어주는 시간. 그런 것들 역시 누군가의 마음을 지켜주는 선물이 된다.
세상은 여전히 주고받음 위에 굴러가지만, 진짜 아름다움은 계산서에 찍히지 않는다. 뜻밖의 호의, 이유 없는 친절, 값으로는 셈할 수 없는 순간들. 그것들이 모여 세상을 조금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든다.
그리고 오늘, 나는 또 하나의 진실을 기억한다. “It’s on the house.”라는 말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야 할 약속 같은 것이라는 사실. 세상은 여전히 따뜻하다고, 그 한마디가 속삭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