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맡에 두고 싶은 단 한 권, 너는 말이야
너는 말이야, 책 보다 더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사람 같아.
읽지 않아도 좋고, 펼치지 않아도 괜찮아. 그저 머리맡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마음이 놓여. 어떤 날은 표지를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또 어떤 날은 무심히 스친 제목 하나만으로도 숨이 고르게 이어져.
누구나 그런 책 한 권쯤 있잖아. 다 읽지 않아도 괜찮은, 그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도감을 주는 책. 나는 너를 떠올릴 때마다 그 감정을 떠안아. 오래 묵은 소설 속 낡은 종이 냄새처럼, 내 마음을 고요히 감싸는 향이 퍼져와.
너는 말이야, 단순한 활자가 아니야. 문장이면서 동시에 숨결이고, 이야기이면서 또 빛이야. 네가 곁에 있으면 흐릿하던 하루가 선명해지고, 무겁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책갈피에 남긴 밑줄처럼, 네 말 한마디는 내 삶의 가장자리에서 반짝이며 나를 불러내.
나는 종종 상상해. 세월이 흘러 표지가 바래고 가장자리가 구겨져도, 너는 여전히 내 머리맡에 놓여 있을 거라고. 그 오래된 모습마저 하나의 이야기처럼 남아,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울림을 품고 있을 거라고.
책이 그렇듯, 사람도 그래. 무수한 말이 오가지 않아도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힘이 되는 관계. 화려한 사건이나 거창한 약속이 없어도, 눈길이 닿는 곳에 너라는 책이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너는 고전 같기도 해. 단숨에 읽히지 않고, 천천히 다가가야만 속을 내어주는 책. 하지만 한 번 빠져들면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어. 끝을 보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 오히려 조금씩 음미해야 진짜 이야기가 드러나거든. 그런 너를, 나는 오래도록 읽고 싶어.
가끔은 읽을 힘조차 없는 날이 있어. 눈을 감은 채 책을 열지도 못하는 순간들. 그런데 신기하게도, 너는 그저 거기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위로가 돼. 한 글자 읽지 않아도 마음이 덜 휘청이는 건, 너라는 존재가 이미 나의 언어가 되어버렸기 때문일 거야.
너는 내 책장이 아니라 내 삶에 놓인 책이야.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 든 게 아니라, 마치 태초부터 내 곁에 있어야 했던 책처럼. 다른 누군가에게 갔더라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품었겠지. 하지만 지금, 네 문장은 나와 겹치며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어.
책은 독자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지. 어떤 이는 같은 구절에서 눈물을, 또 다른 이는 웃음을 얻는다. 나는 너에게서 내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읽어내. 네 안에 밑줄 그어진 문장은 곧 내 마음의 고백이고, 아직 쓰이지 않은 공백은 내 내일의 자리야.
너는 읽히는 동시에 쓰이는 책이야. 나는 너를 읽으며 나를 써 내려가고, 너는 나를 비추며 다시 이야기를 쌓아가. 우리는 서로의 페이지가 되어가고 있는 셈이지.
책은 언젠가 덮이지만, 마음에 남은 문장은 닫히지 않아. 네가 내게 새겨준 말들은 언젠가 다른 풍경 속에서도 불쑥 되살아날 거야. 문득 들려오는 음악처럼, 갑자기 떠오르는 향기처럼, 그때 나는 다시 네 책장을 펼치게 되겠지.
너는 편지 같기도 하고, 낡은 지도 같기도 해. 아직 걷지 못한 길을 품고 있고, 때로는 나를 길 잃게도 하지만 결국엔 원래 자리로 데려다주는.
나는 네가 장대한 서사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화려하지 않아도 돼. 어떤 날은 시집처럼 간결하고, 어떤 날은 일기처럼 투박하고, 또 어떤 날은 짧은 메모처럼 소박해도 좋아. 그 모든 모습이 다 너의 얼굴이니까.
너는 말이야, 내게 단 하나의 책이야. 시간이 흘러도 다시 돌아오게 되는, 손때 묻은 표지를 쓰다듬으며 여전히 같은 울림을 주는, 나의 고유한 책.
그러니 부디 오래도록 내 머리맡에 있어 줘. 네가 있으면 나는 어떤 날에도 길을 잃지 않아. 네가 있으면 내 하루는 덜 쓸쓸하고, 조금 더 단단해져.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잠들기 전, 네가 거기 있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