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길 위의 그림자
이 도시의 밤은 반짝이지만,
빛보다 더 깊은 어둠이 곳곳에 숨었다.
나는 그 어둠 속에서, 너의 그림자를 찾고 있다.
하늬는 지금, 그렇게 도시를 걷고 있었다.
바람은 찬데, 네가 남겼던 숨결이 아직 따뜻했다.
불빛은 많았지만, 별빛은 없었고—
도시는 오래전 잊힌 슬픔처럼, 눈부신 외면 속에 침묵을 삼켰다.
하늬는 그 침묵을 듣고 있었다.
그 속에서 루카의 목소리가 흩어져 다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도시는 내게 끝없는 무대였어.
하지만 관객도, 조명도 없이 혼자 서 있는 무대.”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하늬의 가슴에는 고요히 물이 찼다.
섬에서는 바람이 말을 걸었고, 파도가 응답했는데—
도시는 하늬를 바라보지도, 불러주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하늬는 이곳에 있었다.
루카가 외면했던 것들을, 하늬는 온몸으로 안고 싶었다.
그날 새벽, 하늬는 오래된 지하철 출구 근처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물빛 눈을 가진 고양이는,
가만히 하늬를 바라보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이상했다.
섬에서 만난 고양이들과는 달랐다.
그 눈동자 속엔, 낡은 이별이 말없이 남아 있었다.
“너, 혹시 루카를 알아?”
하늬는 조심스레 물었고, 고양이는 담벼락 너머로 사라졌다.
그러나 다음날 밤, 다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하늬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달.
루카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달빛 아래선 모든 게 선명해져."
그 말처럼, 고양이 ‘달’은 매일 밤 도시의 그림자 위를 걸었다.
하늬는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깨달았다.
도시가 전부 낯설지만은 않다는 것을.
지금 이 골목은, 누군가의 추억이고 누군가의 상처였다는 것을.
어느 날, 낡은 철문 옆 벽에서 작은 사진 하나가 하늬의 발을 붙잡았다.
모래바람처럼 바랜 그 사진 속엔,
루카가 있었다.
지금보다 말랐지만 눈빛은 또렷했고,
그 옆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빛은 멀어도, 마음은 닿을 수 있어.”
하늬는 숨을 멈췄다.
그리고 느꼈다.
도시를 견뎠던 루카의 시간이 이곳에 아직 숨 쉬고 있다는 것을.
그 순간, 달이 그녀의 무릎 위에 올라왔다.
그리고 고요히 앉았다.
마치 루카의 자리를 대신하듯.
“그래, 기다리는 중이었구나.”
하늬는 달을 쓰다듬었다.
그날 밤, 하늬는 혼자가 아니었다.
하늬는 일기를 썼다.
“나는 아직 이 도시가 무섭다.
하지만 두려움만큼 선명한 끌림이 있다.
빛에 갇혀 있던 마음들이, 그림자 속에서 말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아간다.
달과 함께 걷는 이 밤,
나는 다시 너를 찾아가고 있다.”
도시는 여전히 바쁘게 흘러갔다.
그러나 그 도시 한편,
하늬는 아주 조용히 별을 다시 그리고 있었다.
**
며칠 후였다.
하늬는 자주 가던 골목에서 낯선 실루엣을 마주했다.
멀리서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던 그림자.
달이 먼저 알아봤다.
짧은 울음소리 하나.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림자는 천천히 다가왔다.
오래된 모자를 눌러쓴 채, 숨을 고르며.
“하늬…”
그림자는 아주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하늬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 이름을, 어쩌면 바람 속에서 잘못 들은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러나 달이 그의 발치에 다가가 몸을 비비자,
하늬의 눈동자가 떨렸다.
돌아보았다.
그림자는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한때 별빛을 꿈꾸던 눈이었다.
지금은, 무수한 밤을 견딘 사람의 눈이었다.
“루카…?”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손에 쥐고 있던 낡은 노트를 건넸다.
표지엔 희미하게 적혀 있었다.
‘도시에서 잃어버린 별의 목록’
하늬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 노트 위엔 그녀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가장 마지막 줄,
흐릿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글씨로.
그리고 그 순간,
도시의 밤하늘에 작은 별 하나가 반짝였다.
그 누구도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하늬는 알 수 있었다.
그 별은,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의 첫 장이라는 걸.
**
"그림자처럼 스쳐간 사람도, 언젠가는 빛이 되어 돌아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