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밖의 세상
바닷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서 하늬는 처음으로 길을 잃었다.
섬에서 도시로 건너온 그녀는 아직 전깃줄 소리에 익숙하지 않았다.
콘크리트 바닥은 모래처럼 부드럽지 않았고, 별은 높은 건물 사이로 겨우 얼굴을 내밀었다.
"여기가… 네가 있었던 곳이구나." 하늬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이며, 꼬리를 천천히 바닥에 감았다.
달빛이 희미하게 퍼지는 골목 끝, 낡은 창문 아래에 앉은 고양이가 있었다.
그 고양이는 하늬를 보지 않았다. 아니, 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저 눈꺼풀을 절반쯤 내린 채, 멈춘 숨처럼 고요했다.
“루카…?”
하늬가 다가가자 고양이의 귀가 살짝 움직였다.
이름을 잊은 듯하던 그 눈동자가, 마침내 그녀를 향해 떨렸다.
“하늬.”
루카는 오래된 노트 한 권을 앞발로 밀어주었다.
비에 젖어 누렇게 바랜 종이 위, 발톱으로 꾹꾹 눌러쓴 글자들이 가득했다.
‘도시에서 잃어버린 별의 목록’
노트 표지에 적힌 문장을 본 하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창문 너머 어둠 속에서, 그녀는 작고 낯익은 그림자 하나를 발견했다.
“달…?”
그림자는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다가왔다.
은빛 목에 두른 스카프가 달빛을 받아 살짝 반짝였다.
그날 밤, 세 마리의 고양이는 낡은 창문 아래에서 다시 만났다.
**
하늬는 매일 도시의 길을 익혔다.
지하철에서 올라오는 바람 냄새, 식은 어묵 국물 위로 흐르는 사람들의 소리,
그리고 루카가 지나간 벽돌길의 발자국 냄새까지.
도시는 섬과 달랐다.
섬은 늘 하늬의 등을 밀어주었지만, 도시는 등을 밀기도, 문을 닫기도 했다.
“여기서 난 많은 걸 잃었어.” 루카는 어느 날, 창문 앞에서 말했다.
“눈을 감으면 다시 섬이 떠올라?” 하늬의 물음에 루카는 눈을 감았다.
“아니. 지금은, 너희가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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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고양이는 ‘닫힌 창문’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달은 먼저 창턱에 올라가 몸을 말았다.
하늬는 창문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고,
루카는 노트에 그 창의 이름을 적었다.
“이 창은 너무 오래 닫혀 있었네.” “아직 누군가 안에 있어.” “기다리는 목소리, 들었어.”
세 마리의 발소리가 닫힌 창마다 머물고 나면,
어느 날은 창문이 삐걱 열리고,
어느 날은 고양이 한 마리가 살금살금 얼굴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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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아직 차가웠지만,
세 고양이의 이야기가 바람을 타고 흘렀다.
누군가 말했다. “어젯밤, 내 창 아래 고양이 셋이 지나갔어.” “꿈인 줄 알았는데, 아침에 노트 조각이 남아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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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늬는 밤마다 노트를 펼쳤다. 별 하나를 그려 넣고, 그 아래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닿은 창문 수: 15개’
‘열린 창문 수: 3개’
‘아직 기다리는 창문 수: 무수히’
그 옆에 루카가 작은 발바닥 도장을 찍었다. 달은 꼬리를 곡선처럼 말아 그 도장 위에 덧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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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날 밤, 세 고양이는 가장 오래 닫혀 있던 창문 앞에 섰다.
하늬가 속삭였다. “이번엔 꼭 열릴 거야.”
루카는 노트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달은 창문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세 고양이가 창 아래 나란히 앉았다.
창문은 열리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별이, 창문 안에서 자라고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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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여전히 밤이었다. 하지만 그 밤은 어제와 달랐다.
왜냐하면, 세 마리 고양이가 누군가의 창밖에 조용히 앉아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