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좁은 하늘, 높은 벽

by Helia

도시의 하늘은 종잇장처럼 얇고 접혀 있었다.
고개를 들어도 구름보다 간판이 먼저 보였고,
별은 건물 틈 사이에서 조심스레 숨을 쉬었다.

하늬는 그 하늘 아래 작은 그림자처럼 앉아 있었다.

“벽이, 너무 많아.”
하늬가 말했다.

달이 그녀 옆에 앉았다.
“이 도시에선 벽이 먼저 말을 걸지 않아.
우리가 먼저 다가가야 해.”

루카는 조용히 노트를 꺼냈다.
책등이 닳은 채, 모서리가 접혀 있는 노트.
그는 오늘의 목적지를 한 장 넘기며 말했다.

“다음은… ‘폐허촌 창문’.”

**

폐허촌은 도시의 끝자락에 있었다.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너무 오래되어 잊힌 이름이었다.

가로등 불빛도 닿지 않는 그곳엔
벽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사람보다 고양이의 발자국이 더 많은 거리.

“문이 아니라, 벽이 집이 되는 곳이야.”
루카가 낮게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하늬는 작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린 창문 없는 곳에서도 별을 찾을 수 있잖아.”

**

첫 번째 벽은 담쟁이가 감싸고 있었다.
누군가 오랫동안 창문을 두드린 흔적이 없었다.
창문은 닫혀 있었고,
안쪽에선 인기척조차 없었다.

하늬는 조용히 창문 아래에 앉았다.
꼬리를 감싸 안은 채, 긴 귀를 바짝 세웠다.

잠시 후, 아주 미세한 숨소리가 들렸다.
쾅쾅 울리는 도시의 소음 사이로,
창 안쪽의 누군가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

“안에, 있어.”
하늬가 속삭였다.

“문을 열까?”
달이 물었다.

하늬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안 돼.
벽은 힘으로 여는 게 아니야.
그냥… 여기 앉아줄래?”

루카는 노트에 적었다.
‘폐허촌 창문 1 — 안에 누군가 있음.
하늬, 첫 번째 앉음.
아직 문은 안 열림.’

그 문장은 조용히, 창 앞에 내려앉았다.
마치 고양이의 발소리처럼,
작고 부드럽게.

**

둘째 날, 그들은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창문이 아니라,
그림자처럼 우뚝 솟은 벽이 그들을 막아섰다.

“저 벽은 너무 높아.”
달이 말했다.

“높아 보여도, 하늘은 있겠지.”
하늬가 상자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위로 올라섰다.

루카가 다가와 그녀를 말리려 했지만,
하늬는 조심스럽게 벽을 타고 올랐다.

그녀는 벽 위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순간—
아주 작은 틈,
그 너머에 하늘이 있었다.

**

“보여.”
하늬가 외쳤다.

“뭐가?”
달과 루카가 동시에 물었다.

“정원.
그리고… 창문 앞에 앉은 고양이.”

**

그 고양이는 등 뒤에 창문을 두고,
머리를 살짝 기울인 채 앉아 있었다.
눈을 깜빡이는 속도마저 느리고,
움직임도 조심스러웠다.

하늬는 조용히 속삭였다.
“너도, 여기 있었구나.”

고양이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 눈동자엔 오래 전의 바다가 깃들어 있었다.

**

하늬는 벽 위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루카의 노트 옆에 앉아 말했다.

“그 아이는… 나와 닮았어.
섬에 있을 때, 밤마다 파도 소리만 듣던 내 모습.”

루카는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기다려 보자.”
달이 말했다.
“이번엔 우리가, 창문이 되어보자.”

**

그날 밤, 하늬는 노트 한 장을 찢었다.
그리고 거기 이렇게 적었다.

‘괜찮아. 우린 여기 있어요.
별이 너에게 닿을 때까지,
계속 기다릴게요.’

그 쪽지를 달의 꼬리에 묶었다.
달은 조용히 벽을 넘어 정원 안으로 사라졌다.

**

셋째 날 아침,
그 고양이는 처음으로 창가에 앉았다.

창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지만,
그 그림자 아래 고양이 셋의 자리가 생겼다.

**

시간은 흘렀고,
폐허촌에는 새로운 일이 생겼다.

낡은 벽에 작은 구멍이 하나씩 뚫리기 시작했다.
창문을 닫았던 집들의 담벼락 사이로
바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누군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젯밤, 고양이 셋이 우리 집 앞에 있었어.”
“무섭지 않았어. 오히려… 따뜻했어.”

**

하늬는 밤마다 별을 기록했다.

‘열리지 않은 창 수: 9
기다리는 고양이 수: 4
오늘도 별 하나, 발견.’

루카는 그 아래
‘우리는 아직 부족하지만,
충분히 다정하다’
라는 문장을 남겼다.

**

그날 밤,
세 고양이는 ‘높은 벽’ 앞에 다시 앉았다.

그 벽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하지만 달빛은 그 위에 내려앉았다.

하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벽은, 문이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지도 몰라.”

루카가 물었다.
“그럼 뭐야?”

하늬는 웃었다.
“누군가의 별이 머무는 자리.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곳처럼.”

**

폐허촌의 하늘은 여전히 좁았고,
벽은 아직 높았다.
하지만 그 아래에서,
세 고양이는 별을 쌓고 있었다.

**

그들은 다음 페이지에
이렇게 적었다.

‘내일, 우리가 갈 곳:
불 꺼진 창.
그곳에도 누군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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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