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다시 돌아온 자리

by Helia

바람은 계절을 끌고 도시로 들어왔다. 고양이의 콧바람보다 살짝 빠른 속도로, 낮은 창문 사이로, 무너진 벽 틈으로 스며들었다. 짠내가 났다.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냄새였다. 하늬는 잠들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콧등을 간질인 것은 바람이었지만, 그 바람이 데려온 건 기억이었다.

섬. 그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둥글게 말리던 곳. 하늬는 가만히 눈을 떴다. 곁에서 자고 있던 달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누가 왔어."

정말로 그랬다. 멀리서, 아주 낯익은 발자국 소리. 기억 속에 묻어둔 리듬. 그리고 나타난 고양이. 털빛은 바래 있었지만, 꼬리의 곡선은 그대로였다. 하늬가 꿈에서조차 부르지 못했던 이름.

"솔…"

솔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하늬를 바라봤다. 아주 오랜 시간, 별을 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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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엔 여전히 벽이 많았다. 하늬는 그날 밤, 솔과 함께 그 벽을 걸었다. 달과 루카도 함께였다. 네 마리 고양이, 각자의 그림자를 데리고.

"이 도시엔 왜 이렇게 벽이 많을까?" 솔이 물었다.

루카가 대답했다. "숨기고 싶은 게 많아서. 마음도, 말도, 표정도."

하늬는 웃었다. "근데 우리는 숨기기엔 꼬리가 너무 길잖아."

달이 킥킥 웃었다. 벽 옆에 핀 이름 모를 풀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조그만 흔들림에 도시의 밤이 잠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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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흘렀다. 루카는 여전히 노트에 글을 남겼다. "도시에서 잃어버린 별의 목록." 그 제목 아래, 흐릿한 글씨들이 하나둘 적혀 있었다. 그 사이에 솔이 다가왔다.

"나도 적어볼래."

루카는 노트를 내주었다. 솔은 잠시 침묵하다가, 작고 단단한 글씨로 한 줄을 남겼다.

‘돌아오는 건 용기가 아니라, 기다림에 대한 대답이야.’

하늬는 그 문장을 보고 오래도록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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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달이 혼자 창가에 앉아 있었다. 하늬가 다가가 옆에 앉았다.

"기다리는 거, 예전엔 참 지루했는데... 지금은 아니야."

달은 고개를 들었다. 좁은 하늘. 높은 벽. 그 사이로 별 하나가 떠 있었다.

"우리는 늘 돌아올 자리를 만든다, 하늬. 그게 고양이의 방식이야."

하늬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의 벽엔 아직도 이름 모를 낙서가 가득했지만, 그중 가장 작고 조용한 글씨 하나를 그녀는 알아보았다.

‘하늬는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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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네 마리 고양이는 옥상에 올랐다. 도시가 내려다보였다. 멀고 흐릿한 불빛들 사이로, 각자의 그림자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하늬는 말했다. "나는 다시 돌아왔어."

루카가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

달이 말했다. "나는 오늘을 기록할게."

솔이 말했다. "나는 여기 있을게. 내일도."

그리고, 바람이 그 모든 말을 별 아래로 데려갔다. 도시의 밤이 조용히 숨을 골랐다.

하늬는 마지막으로 한 문장을 노트에 남겼다.

‘돌아온 자리는, 이제 우리의 집이 되었다.’

별 하나가 그 문장을 비췄다. 그건 시작도, 끝도 아닌, 다시 이어지는 이야기의 중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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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