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파도에 실린 편지

by Helia

바다는 언제나 말이 없었다. 그러나 하늬는 안다. 그 침묵은 바람보다 깊고, 별빛보다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걸.

그날도 하늬는 모래 위에 앉아 있었다. 바다가 꼬리를 적시면 그녀는 살짝 몸을 움츠렸다가, 다시 잔잔해지면 발끝으로 무언가를 쓰듯 모래를 밀었다. 솔과 달은 마을 언덕 너머로 사라졌고, 하늬는 홀로 파도와 대화 중이었다.

"이 말을, 누군가가 들어줄 수 있을까?"

하늬는 모래 위에 천천히 글자를 남겼다. ‘나는 괜찮아. 도시의 별빛을 다시 찾았어. 우리 함께였기에.’

그러자 파도가 다가와 조용히 그 문장을 지워갔다. 마치 비밀을 품은 전령처럼, 그 말들을 가슴에 품고 떠났다.


---

며칠 전, 하늬는 오래된 부둣가에서 낡은 유리병 하나를 발견했다. 병 안에는 접힌 쪽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별을 잃은 줄 알았지만, 내가 등을 돌리고 있었던 거였어. 별은 늘 거기 있었는데. – R’

하늬는 그 문장을 노트에 옮겨 적고, 조용히 병을 품에 안았다.

“이건 루카는 아니야. 하지만… 분명, 우리처럼 별을 본 고양이야.”

그날 이후, 하늬는 매일 바다에 편지를 띄우기 시작했다. 조개껍데기 속에 작은 글귀를 숨기고, 해조류 사이에 짧은 말들을 감췄다. 그녀는 믿었다. 어딘가 이 바다를 통해 연결된 누군가가 그 편지를 읽을 거라고.


---

솔은 처음엔 코웃음을 쳤다. "고양이가 우체국이라도 된 줄 아나."

달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바다는 길을 아니까. 언젠가는 닿을지도 몰라."

하늬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였다. "도시에서 우리가 외롭지 않았던 건,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 마음이 닿을 거라고 믿었으니까."


---

밤이 되면 네 마리 고양이는 해안가에 모였다. 루카, 하늬, 솔, 달. 파도는 먼 기억을 들려주듯 잔잔했고, 별빛은 불씨처럼 깜박였다.

루카가 말했다. "편지를 쓴다는 건… 결국 내 마음을 밖으로 꺼내는 일. 내가 나에게 말을 걸어보는 거야."

하늬는 눈을 감았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음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면, 그건 이미 기적이야."

솔은 가만히 별을 올려다봤다. "그 말, 별빛 같네. 어둠을 오래 지나 겨우 하나. 하지만 그 하나가, 어떤 밤을 바꿀 수도 있지."


---

며칠 뒤, 하늬는 조심스럽게 병 속에 또 하나의 편지를 넣었다. 이번엔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하늬'.

'우리는 다시 만났고, 다시 웃었고, 다시 걸었어. 아직 잊히지 않은 것들이 있어. 하지만 너에게 말하고 싶었어. 괜찮다고. 너도 괜찮아질 거라고.'

병은 파도에 실려 멀리 흘러갔다. 누군가의 해안에 닿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하늬는, 그 말이 이미 어딘가에 닿았다고 믿었다.


---

그날 밤, 하늬는 노트에 한 줄을 적었다.

‘별은 멀리 있지 않아. 단지 우리가 고개를 들지 않았던 거야.’

그 문장을 바라보며 그녀는 떠올렸다. 도시의 좁은 창문 하나. 그 창 너머, 누군가도 별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

그리고 바람이 거세게 불던 날. 파도가 들고 온 낯선 병 하나가 해안에 도착했다.

달이 먼저 병을 굴렸고, 솔이 입구를 툭툭 쳤다. 하늬는 병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병 안엔 짧은 쪽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편지를 읽었어요. 고마워요. 그리고, 나도 괜찮아졌어요. – H'

네 마리 고양이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바람이 말을 대신했고, 눈빛이 모든 것을 전했다.

루카는 말했다. "우리가 누군가의 밤에 별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늬는 가만히 웃었다. "응, 그리고 우리가 보낸 말들은… 사라지지 않아. 파도가 데려가도, 언젠가는 도착해."


---

밤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별 하나가 천천히 떠올랐다. 고양이들은 말없이 그 빛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바다는 단지 바다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야기를 실은 길이었고, 마음이 닿는 다리였고, 별빛을 전하는 편지였다.

그리고 하늬는 알았다. 우리가 남긴 말들이, 언젠가는 누군가의 삶에 닿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파도에 실린 편지의 기적이라는 것.

keyword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