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의미 없는 오늘을 사랑하는 법
아무 의미 없는 하루를 사랑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질문처럼 들리지만, 요즘 나는 자꾸 이 말을 곱씹게 된다. 모든 게 허무하게 느껴질수록, 이상하게 더 많은 것들이 좋아진다. 끝을 떠올릴수록 지금이 더 애틋해지고, 의미를 놓았을수록 순간이 더 빛나기 시작한다. 그건 어쩌면 이 세계의 역설일지도 모른다.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인정할수록, 살아 있는 지금이 기적처럼 느껴지는 것.
삶은 어차피 무너지고 사라지는 것이라는 걸 안다. 내가 쌓아온 것들, 사랑했던 순간들, 울고 웃었던 감정들. 언젠가 다 흩어질 테고, 누군가에겐 아무런 기록도 없이 지나갈 것이다. 예전엔 그게 두려웠다. 이렇게 살아서 뭐가 남지? 이 모든 게 대체 무슨 소용이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그 질문들에 질려버린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의미를 증명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만난 말이 ‘낙관적 허무주의’였다.
낙관적 허무주의는 말 그대로 허무를 인정한 채로도 낙관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다. 삶은 본질적으로 무의미하고, 모든 것은 언젠가 끝난다는 것을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도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려는 마음. "아무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좋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불가능한 조합처럼 느껴졌던 그 두 감정은, 내 안에서 꽤 단단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모든 감정과 행동에 이유가 있어야만 했다. 왜 이렇게 슬픈지, 왜 이런 선택을 하는지, 왜 계속 살아야 하는지. 의미 없는 감정을 용납하지 못했고, 아무 이유 없이 흘리는 눈물도, 갑자기 웃게 되는 순간도 늘 설명이 필요했다. 하지만 삶은 꼭 그렇게만 작동하지 않는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고, 이해하지 못한 채 흘러가는 시간이 더 많다. 그걸 붙잡으려 애쓰는 대신, 나는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유 없어도 괜찮다고.
허무를 받아들였을 때, 나는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도, 잘 살아야만 한다는 부담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성공하지 않아도 되고, 특별하지 않아도 되고, 때로는 그냥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이 나를 살렸다. 무게를 내려놓으니 가볍게 숨 쉴 수 있었고, 그제야 주변의 아주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따뜻한 커피잔, 반쯤 접힌 책갈피, 창밖으로 흐르는 노을. 이전엔 의미 없는 것들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하루를 살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묻는다. 아무 의미가 없다면, 왜 계속 살아야 하냐고.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잖아요." 거창한 목적이나 사명 없이도, 그냥 오늘이 괜찮은 날이면 그걸로 족하다. 의미는 애초에 정답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믿는다. 의미가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이 오히려 더 따뜻해질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낙관적 허무주의는 희망의 철학이 아니다. 희망은 언젠가 좋아질 거라는 전제를 필요로 하지만, 낙관은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는 수용에서 시작된다. 지금이 충분히 좋은 순간일 수 있다는 태도, 그게 낙관이고, 나는 그 태도를 배우고 있다. 어둠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창문을 열고 바람을 들이는 일. 그것이 내 방식의 삶이고, 내 방식의 문장이다.
밤하늘을 보면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지만, 그중 일부는 이미 죽은 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빛을 바라보며 소원을 빈다. 이미 사라진 것에도 반짝임은 남는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마치 우리의 사랑과 기억도 그런 게 아닐까. 끝났지만 여전히 반짝이는 것. 의미는 없어졌지만 여전히 좋았던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지금 이 순간을 가볍게 끌어안는다. 무의미한 걸 알면서도 좋아할 수 있는 것, 그게 나의 낙관이다.
삶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의 특별한 성취가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지 않아도, 그저 내가 오늘 하루를 무사히 건너온 것으로 충분하다. 별일 없는 하루가 사실은 가장 소중한 하루라는 걸 우리는 자주 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할 수 있다면, 이미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거다.
나는 끝을 자주 상상한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대답은 언제나 같다. 남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을 더 사랑해야 한다. 아무것도 남지 않기에, 지금이 더 귀하고 단단하다. 나중을 위해 참지 말고, 누군가를 위해 아끼지 말고, 지금 나를 위해 쓰는 하루. 아무 의미도 없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 자체로 다 가진 하루.
낙관적 허무주의는 나를 비관에서 꺼내주지 않았다. 대신 그 비관 속에서 잠시 앉아 숨을 고르게 해 주었다. 울고 난 뒤 마시는 미지근한 물처럼, 모든 걸 포기한 밤에 마지막으로 켜는 작은 스탠드 불빛처럼.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자주 무너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간다. 의미 없음을 품은 채, 그 무게마저도 가볍게 사랑하며.
오늘 당신도 허무하다고 느꼈다면, 그걸 부정하지 않아도 좋다. 오히려 그 허무 속에 머무르며 눈을 감아보자. 마음속에 아주 작고 조용한 것들이 살아나고 있을지 모른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이, 이름 붙일 수 없는 마음들이, 지금 이 순간을 아주 부드럽게 감싸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유 없이 좋은 것들을.
이제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그래도, 아무것도 아닌 삶을 사랑한다고. 의미 없음을 알아서 더 따뜻해지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지금을 놓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