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역의 계절
벌써 8월의 끝자락이다. 오늘이 지나면 여름은 막차를 타고 떠나고, 내일이면 달력은 새로운 장을 펼친다. 시간은 참 야속하다. 잡으려 하면 모래처럼 흘러내리고, 돌아보면 이미 멀리 달아나 있다. 지금 내 마음은 꼭 8호선에서 내려 9호선 기차로 갈아타는 순간 같다. 같은 도시를 달리지만, 전혀 다른 길을 향하는 환승. 창밖 풍경은 이어지지만, 차 안 공기는 다르고, 발걸음의 속도 또한 달라진다.
여름은 오래 탄 전철 같았다. 창밖으로는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고, 차 안에는 땀 냄새와 웃음이 뒤섞였다. 바닷가로 향하던 날의 물결, 뜨거운 아스팔트를 밟으며 걸었던 오후, 밤하늘을 수놓던 불꽃놀이까지, 모든 장면이 차창 밖 풍경처럼 빠르게 스쳐갔다. 오늘은 그 여름의 종착역 같다. 더위는 여전하지만, 공기 속에는 이미 다른 기운이 스며들어 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여름의 잔해와 가을의 예고편이 뒤엉켜 있다. 반팔 차림의 사람들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스치고, 아이스크림을 들고 웃는 아이들의 모습에도 묘한 느긋함이 묻어난다. 꼭 환승역 승강장에서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처럼, 모두가 이별을 예감하면서도 서두르지 않는다.
노을은 오늘따라 유난히 짙다. 붉은빛과 보랏빛이 층층이 겹쳐 도시의 벽면에 스며드는 순간, 나는 플랫폼 위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떠나간 열차의 진동은 아직 몸에 남아 있고, 다가올 열차의 바람은 아직 닿지 않는다. 이 짧은 공백이 쓸쓸하면서도 특별하다. 여름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가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바로 지금, 그 사이에 내가 있다.
곧 9호선이 들어올 것이다. 그 열차 창밖에는 여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게 분명하다. 황금빛 들판,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 창가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 시끄럽던 웃음 대신 조금 더 잔잔한 목소리들이 오가겠지. 계절이 바뀌면 풍경이 달라지고, 풍경이 달라지면 마음 또한 변한다. 나는 그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여름이 남긴 뜨거운 추억은 그대로 품고, 가을이 건네줄 서늘한 바람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오늘 하루를 기록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흘러가는 순간을 붙잡고 싶어서다. 계절은 기약 없이 찾아오고, 또 기약 없이 떠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때의 빛과 냄새, 공기를 글자 속에 담아두는 일뿐이다. 글로 기록하면, 시간이 지나도 다시 꺼내 볼 수 있으니까.
어느새 8월 마지막 토요일. 나는 환승역 플랫폼에 서 있다. 여름의 막차는 떠나가고, 가을의 열차가 천천히 다가온다. 잘 가, 여름. 그리고 어서 와,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