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월요일

젖은 시작의 노래

by Helia

새벽 세시 반, 월요일의 첫 장은 빗방울로 열렸다. 처음엔 유리창을 두드리던 작은 손길 같았지만, 곧 북소리처럼 거세졌다. 아직 밤인지 아침인지 알 수 없는 시간, 세상은 빗소리로 먼저 깨어났다. 하루는 시계가 아닌 물방울의 리듬으로 시작됐다. 눅눅하고 무거운 기운이 이불 위로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비 오는 월요일이 싫다. 이유는 단순하다. 어릴 적부터 비는 늘 번거로움과 짐이었다. 책가방에 신발주머니, 거기에 우산까지 들고 다니던 날이면 두 손이 모자랐다. 결국 뭔가 하나쯤은 잃어버리곤 했다. 버스 안에 운동화를 두고 내리거나, 지하철 의자 위에 우산을 놓고 내린 적도 많았다. 비는 내게 항상 ‘무언가를 빼앗아 가는 날씨’였다.

게다가 사고도 있었다. 시장 바닥에서 미끄러져 대자로 자빠졌던 날. 고인 웅덩이에 옷이 빠지며 진흙투성이가 되었고, 낯선 이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웃음인지 걱정인지 모를 눈빛들. 축축한 흙냄새와 함께 그 순간의 수치심이 여전히 남아 있다. 또 한 번은 버스를 타고 내리다 발을 헛디뎌 빗물 위로 미끄러지며 발목을 접질렸다. 그 후로 비가 굵게 내리는 날이면 발목이 먼저 시큰거렸다. 단순한 통증이 아니라, 기억을 깨우는 자극 같았다. 비는 단순한 날씨가 아니라 오래된 상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빗속을 걸어야 한다. 우산을 펴 들면 세상은 흐릿하게 변한다. 사람들의 얼굴도, 건물의 윤곽도 번져 수채화 같다. 선명해야만 한다는 부담에서 잠시 벗어나는 순간이다. 빗속 풍경은 모호함 속에서 쉼표 같은 시간을 준다.

월요일의 빗길은 늘 더디다. 차들은 조심스레 속도를 줄이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가볍지 않다. 그러나 그 느림 속에서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가로수 잎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 보도블록 위에 피어나는 동심원의 파문, 차창에 매달렸다가 흘러내리는 작은 강줄기. 평소라면 스쳐갔을 사소한 풍경들이 빗속에서는 한 편의 영화처럼 다가온다.

비 오는 날의 기억은 오래 남는다. 우산도 없이 뛰던 학창 시절, 젖어버린 양말에서 올라오던 차가움, 혹은 누군가와 나란히 걸었던 빗속의 침묵. 모두 빗소리와 함께 내 안에 저장되었다. 아마도 빗방울은 기억의 자물쇠 같은 것일지 모른다. 물방울 하나하나에 오래된 조각들이 숨어 있다.

빗방울은 음악이다. 우산 위에 떨어지는 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선율이 된다. 굵게 퍼부을 땐 드럼처럼 요란하고, 가늘게 스칠 땐 현악처럼 부드럽다.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떠올리지만, 사실 필요 없다. 세상 자체가 이미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불편함은 분명하다. 젖은 옷은 무겁고, 신발은 질척거리며, 머리칼에서는 눅눅한 냄새가 난다. 하지만 불편만 본다면 비의 진짜 얼굴을 놓치는 것이다. 비 뒤에 오는 맑음, 씻겨나간 공기, 더 선명해진 초록. 그것들은 빗속을 지나야 만 얻을 수 있는 보상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무겁고 지치는 날들을 건너야만 빛나는 순간을 더 깊이 볼 수 있다.

나는 빗속의 월요일에 자주 나 자신에게 묻는다. “오늘도 살아갈 힘이 있나?” 대답은 빗소리가 대신한다. 수천 개의 물방울이 한꺼번에 떨어지며 말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젖은 채로도 하루는 흘러간다고. 그 대답에 등을 떠밀려 길을 나선다.

비 오는 월요일은 언제나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어떤 이는 우울의 서막이라 말하고, 또 다른 이는 새로운 세례라 부른다. 결국 그 의미는 내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달려 있다. 무거움으로 볼지, 빛으로 볼지는 나의 몫이다.

어쩌면 월요일이 힘든 게 아니라,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눌러온 건지도 모른다. 비는 그 두려움을 씻어낸다. 빗방울에 스며들어 마음속 오래된 먼지를 씻어낸다. 젖어버린 옷처럼, 두려움도 흘려보내면 된다.

창문 위의 물방울이 서로 합쳐져 흘러내린다. 작은 방울들이 모여 큰 흐름을 만든다. 내 안의 작은 용기들도 그렇게 모여 결국 한 걸음을 내딛게 한다. 오늘이 월요일이라는 사실, 그리고 비가 내린다는 사실. 그 두 가지가 겹쳐 나는 또다시 하루를 살아낼 이유를 얻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비 오는 월요일은 어떤가.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인가, 아니면 새롭게 시작되는 첫 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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