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날씨

길어진 여름, 잃어버린 9월

by Helia

9월은 가을이 아니다. 코로나 이후, 계절의 시계는 어딘가 고장 난 듯 여름을 오래 붙잡아 두고 있다. 달력은 분명 가을을 가리키지만, 창문을 열면 밀려드는 건 서늘한 바람이 아니라 뜨거운 열기다. 예전 같으면 라테를 데워 마셨을 때인데, 지금은 여전히 얼음을 잔뜩 담은 컵을 손에 쥔다. 계절의 풍경이 이렇게 바뀔 줄, 그때는 몰랐다.

내 기억 속 9월은 달랐다. 코로나가 세상을 덮치기 전, 지난가을은 그야말로 계절 교과서 속 한 페이지 같았다. 낮에는 햇살이 따뜻하고, 아침저녁에는 선선한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공기 속에는 풀잎 향과 흙냄새가 은은하게 섞여 있었고, 땀이 식으며 남긴 미세한 소금기조차 바람이 금세 털어내주곤 했다. ‘가을이 왔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누구나 몸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날씨였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몇 해 동안, 9월의 얼굴은 낯설게 변해버렸다. 긴 여름이 좀처럼 끝나지 않고, 가을은 늦게서야 문을 두드린다. “가을이 실종됐다”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여름이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9월의 태양은 여전히 뜨겁다. 아스팔트 위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저녁에도 열기가 가시지 않아 창문을 열어도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다.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기후 자체가 달라졌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나는 두 개의 9월을 동시에 기억한다. 하나는 코로나 이전, 교과서 같은 가을. 다른 하나는 코로나 이후, 길어진 여름의 그림자에 가려진 가을. 두 기억이 겹칠 때마다 묘한 공허함이 찾아온다. 마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과거의 9월은 일상에 온화한 리듬을 더해주었다. 학교 운동장에 앉아 까먹던 귤의 상큼함, 버스 창문 사이로 스며들던 서늘한 공기, 퇴근길에 사 들인 호떡 봉지에서 피어오르던 김. 그 작은 풍경들이 모여 계절의 얼굴을 만들었다. 하지만 요즘은 풍경이 달라졌다. 마트에서는 9월에도 에어컨 필터를 진열하고, 편의점에는 얼음컵이 끊이지 않는다. 카페의 가을 한정 메뉴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여전히 잘 팔린다. 계절은 달력 속에서만 움직이고, 현실 속에서는 좀처럼 자리를 바꾸지 않는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날씨 이야기를 넘어, 삶의 방식까지 흔들어 놓는다. 여름이 길어지자 우리는 계절의 신호를 놓치고, 감각은 둔해진다. 코로나로 실내에 머물던 시간이 길어진 탓도 있겠지. 창밖을 바라보며 계절을 느끼던 시간이 줄어들자, 어느 순간부터는 “지금이 가을인가?” 하고 묻는 일이 잦아졌다. 계절의 체감이 희미해진 것이다. 하지만 기후 변화라는 커다란 사실 앞에서는, 우리의 감각 둔화조차 핑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월은 여전히 가을을 예고한다. 한낮에는 여름처럼 덥다가도, 해가 기울면 불쑥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온다. 그 순간, 여름과 가을이 서로 손을 맞잡은 듯 묘한 공기가 흐른다. 긴 여름에 지쳐 있던 몸과 마음이 잠시나마 식어가는 순간이다. 길게 이어진 더위 속에서도, 계절은 분명히 제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종종 하늘을 올려다본다. 코로나 이전의 9월에는 하늘빛이 한결같이 맑고 높았다. 구름은 솜처럼 흩어져 있었고, 저녁노을은 분홍빛에서 주홍빛으로, 다시 남색으로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그때의 하늘은 오래 바라볼수록 마음이 맑아졌다. 그러나 요즘의 9월 하늘은 다르다. 푸르름 속에 뜨거운 열기가 섞여 있고, 구름은 더디게 흘러간다. 여름의 잔열이 남아 있는 탓일까, 파랑이 선명하기보다 무겁게 눌린 듯 보인다.

비도 달라졌다. 예전 9월의 비는 가을의 서정처럼 조용히 내리곤 했다. 빗방울이 창가를 두드리면 마음이 가라앉고, 비 온 뒤의 공기는 투명하게 맑아졌다. 하지만 요즘의 비는 여름 폭우의 연장 같다. 짧고 굵게 쏟아지다 금세 그쳐버린다. 비가 그친 뒤에도 공기는 개운하기보다 눅눅하게 무겁다. ‘가을비’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계절이 보인다. 예전에는 9월이면 거리의 옷차림이 조금씩 변했다. 반팔 옆에 카디건이 등장하고, 머플러가 슬그머니 목에 걸렸다. 하지만 요즘은 9월에도 반팔 차림이 흔하다. 학교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이 여전히 반바지를 입고 뛰어다니고, 지하철 안은 여름옷차림으로 가득하다. 계절의 풍경이 늦춰진 셈이다.

그러나 9월의 매력은 바로 이 모순에 있다. 여름과 가을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어지러운 경계. 덥지만 서늘하고, 밝지만 쓸쓸하다. 낮과 밤의 얼굴이 다르고, 태양과 바람의 기운이 충돌한다. 그 틈에서 사람들은 쉽게 흔들리고, 오래된 기억과 새로운 희망이 동시에 떠오른다. 마치 삶이 그렇듯, 완전히 뜨겁지도 완전히 차갑지도 않은 애매한 순간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더 깊이 바라보게 된다.

나는 9월을 기다린다. 설령 그 계절이 예전 같지 않더라도. 더위가 길게 머무는 9월일지라도, 언젠가는 바람이 바뀌고 하늘빛이 달라진다. 그 순간을 믿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것이 9월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방식이다.

돌아보면, 삶도 계절과 다르지 않다. 길어진 여름처럼 힘든 시간이 계속되기도 하고, 계절의 시계가 멈춘 듯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은 바람이 변하고, 계절은 제 길을 찾아온다. 지금은 여름의 끝자락에 서 있지만, 언젠가는 분명히 가을이 올 것이다.

나는 그날을 꿈꾼다. 창문을 열면 바람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커튼이 가볍게 흔들리는 순간. 공기 속에 ‘이제 진짜 가을이구나’라는 확신이 스며드는 순간. 뜨겁게 길어진 여름 끝에서 마침내 계절이 제 자리를 찾는 순간을.

그날이 오면, 나는 다시 한번 9월의 시를 쓰고 싶다. 지금보다 더 서늘하고, 지금보다 더 투명한 공기를 마시며. 그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계절이 바뀐다는 단순한 진리를 온몸으로 실감하고 싶다.

오늘은 여전히 뜨겁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무더위 너머, 가을은 이미 가까이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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