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은 끝이 아니라, 앞으로의 가능성
2025년, 절반이 흘렀다.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달랐다.
처음엔 달력이 빠르게 넘어가는 걸 보며 초조함만 커졌다. 하루는 금세 저물고, 한 달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반년이 지나도록 손에 잡히는 게 없다고, 스스로를 책망했다. 그러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니, 내 삶에는 이미 여러 겹의 발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브런치 작가 승인 메일을 받던 순간이다. 낯선 제목의 메일을 열자마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화면 속 “승인되었습니다”라는 짧은 문장이, 오랜 기다림과 불안을 단숨에 씻어냈다. 나는 드디어 누군가에게 글을 건넬 수 있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작가’라는 단어가 내 이름 옆에 붙는 순간, 그 무게와 설렘이 동시에 밀려왔다. 혼자 쓰던 글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에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새롭게 단련시켰다.
그 후 나는 여러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밤을 새우며 문장을 다듬었고, 때로는 새벽의 적막 속에서 단어 하나를 붙잡고 씨름했다. 조회수에 웃기도 하고, 무반응에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은 글쓰기가 나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주었다. 글은 고독한 작업 같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독자와 이어지는 다리였다. 그 다리 위에서 나는 매일 흔들리면서도 조금씩 단단해졌다.
올해 나는 또 다른 이름으로 책의 일부가 되었다. 공동참여로 서너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내 이름이 단독으로 박힌 건 아니었지만, 활자 속 어딘가에 내 문장이 담겨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었다. 서점에서 갓 나온 책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종이 냄새와 잉크 냄새가 뒤섞인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그 순간, 내가 쓴 문장이 누군가의 책장에서 머무르게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결코 가볍지 않은 성취였다.
공부의 시간도 빼놓을 수 없다. 사회복지사 이론 과정을 마쳤다. 처음 책을 펼칠 땐 어려운 개념과 생소한 용어들에 막막함만 커졌다. 그러나 한 과목씩 정리하며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끝에 닿아 있었다. 단순히 시험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새로운 눈을 얻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 옆에 서 있는 일의 무게를 알게 되었다. 책 속 문장은 차갑지만,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 와중에 멈춰 두었던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오래전엔 포기했던 낯선 단어들이 다시 내 눈앞에 펼쳐졌다. 한 페이지를 읽는 데 시간이 걸리고, 문장 하나를 외우는 데 며칠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느린 걸음이 쌓일수록 내 안에 또 다른 목소리가 자라났다. 언젠가 이 언어로 세상 어딘가의 독자와 소통할 수 있기를, 그 꿈이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한국어교원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모국어를 가르친다는 건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었다. 문법과 어휘를 넘어, 말속에 담긴 정서와 문화까지 전해야 한다는 책임이 뒤따랐다. 교재를 펼치며 나는 생각했다.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이에게, 단순히 ‘문장’을 넘어 ‘온기’를 전하고 싶다고. 그것이야말로 언어의 본질이 아닐까.
그렇게 돌아보니 2025년 상반기는 결코 공허하지 않았다. 글을 썼고, 책을 냈고, 공부를 이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 한편은 불안하다. 남들보다 속도가 느린 것 같고, 더 많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자책이 고개를 든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멈추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절반의 시간은 충분히 의미 있다.
2025년은 나에게 ‘준비의 해’다. 눈부신 성과보다는, 내일을 위한 토대를 다져가는 시기다. 아직 미완성의 형태일지라도, 나는 이미 많은 것을 이뤄냈다. 브런치에서의 글쓰기, 공동 출간, 사회복지사 공부, 영어와 한국어교원 과정까지. 모두 내 삶을 확장시키는 기둥이 되었다. 절반의 기록은 끝이 아니라, 앞으로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나는 상상한다. 연말에 이 글을 다시 읽게 된다면 어떤 표정일까. “그때는 별거 아니었네” 하며 웃을까, 아니면 “그때의 노력 덕분에 지금이 있구나” 하고 고마워할까.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빛나는 기록이다.
2025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절반은 지나갔지만, 남은 절반은 여전히 나를 기다린다. 나는 계속 글을 쓰고, 공부를 이어가며, 또 다른 책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날,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2025년, 나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분명히 살아 있었다.”
당신의 2025년 절반은 어떤 기록으로 남아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