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지만 지워지지 않는 것들
눈에 보이지 않는 흉터가 가장 깊다. 피부에 남은 자국은 시간이 흐르면 옅어지지만, 마음속에 새겨진 흔적은 희미해지지 않는다. 남들이 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없어진 것이 아니며, 오히려 감춰졌기에 더 오래 살아남는다. 그것은 잉크가 스며든 종이처럼, 아무리 덮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묻곤 한다. “괜찮아?” 나는 본능처럼 대답한다. “응, 괜찮아.” 하지만 그 짧은 대답 뒤에는 무수한 파편이 숨겨져 있다. 말 한마디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균열, 나조차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하는 어둠이 있다. 표정은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가슴 한구석은 여전히 시큰거린다.
어린 시절, 넘어져 무릎이 까진 상처는 금세 아물었다. 하지만 친구가 던진 무심한 한마디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넌 왜 그것밖에 못 하니?” 그 말은 피멍처럼 번져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웃고 흘려들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 말 한마디로 오랫동안 스스로를 의심했다. 무릎의 흉터는 사라졌지만, 자존심에 난 금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성인이 된 뒤에도 보이지 않는 흉터는 늘 함께였다. 가까웠던 사람이 차갑게 말하던 순간. “넌 필요 없는 사람이야.” 그 말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깊숙이 파고들어 마음을 베어버렸다. 겉으로는 웃었지만, 거울 속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오래 머물지 못했다. 그날 이후 나는 웃음을 내보이면서도 마음 한편에 늘 균열을 감춘 채 살아왔다.
이 흉터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게 단단하다고 말한다. 강해 보인다고, 잘 버틴다고 칭찬한다. 하지만 그 단단함은 사실 상처를 가리기 위한 갑옷이었다. 갑옷은 나를 보호했지만, 동시에 내 진짜 얼굴을 숨겨버렸다. 웃음은 가면이 되었고, 태연한 태도는 숨는 방법이 되었다.
그러나 상처는 뜻밖의 순간에 모습을 드러낸다. 버스 창가에 비친 내 얼굴이 울고 있는 듯 보일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오래된 노래 한 구절이 가슴을 파고들 때, 나는 멈칫한다. 숨이 막히고, 마음은 무너진다. 그러나 세상은 내 안의 균열에 관심이 없다. 나는 다시 웃음을 걸치고 걸음을 재촉한다.
혹시 당신도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은가.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의 말투 하나, 스치는 장면 하나가 오래된 기억을 불러내던 경험. 잊은 줄 알았던 상처가 사실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음을 확인하는 순간 말이다. 우리 모두 보이지 않는 흉터를 안고 산다.
하지만 그 상처가 늘 나쁜 것만은 아니다. 흉터는 나를 무너뜨렸지만 동시에 나를 만들었다. 내가 다른 사람의 눈물을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 작은 친절에도 크게 고마워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 흔적 덕분이다. 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에 진심으로 귀 기울일 수 있다. 나는 내 상처 덕분에 조금은 더 부드러워졌다.
나는 가끔 일부러 내 흉터를 꺼내본다. 글로 적고, 기록하며, 스스로와 마주한다. 처음엔 너무 아파서 몇 줄 쓰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적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드러낸다고 사라지지는 않지만, 밖으로 꺼낸 순간 그 흉터는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 비밀로 붙들고 있을 때보다 훨씬 약해진다.
어느 날, 오래된 일기를 꺼내 읽었다. ‘괜찮다’고 수없이 반복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글씨마다 손끝이 떨려 있었음을, 이제는 안다. 나는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다고 적음으로써 겨우 버티고 있었다. 그 일기장은 흉터의 지도였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지도.
밤이 되면 흉터는 더욱 선명해진다. 낮에는 웃음과 일상으로 덮어두었던 흔적이 고요 속에서 드러난다. 그럴 때면 나는 스스로를 다독인다. 흉터가 있다는 건 내가 살아남았다는 증거라고. 상처조차 견뎌낸 흔적이라고.
그러나 나는 안다. 흉터는 여전히 나를 흔든다. 때로는 무너뜨린다. 하지만 그 무너짐 속에서 나는 다시 일어선다. 완벽하게 치유되지 않아도, 그 자국이 있기에 나는 더 깊이 살아간다. 금이 간 도자기가 더 단단해지듯, 내 안의 흉터는 나를 나답게 만든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숨겨둔 흉터가 있지 않은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기억, 혼자만 간직한 그림자,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균열. 그렇다면 당신도 안다. 흉터가 단순히 아픔의 흔적이 아니라 살아남았다는 증거라는 것을.
오늘도 나는 미소 짓는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러나 그 미소 뒤에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흉터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부끄럽지 않다. 감춰야 할 비밀이 아니라 내 삶의 한 장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Hidden scars. 그것은 아픔이 아니라, 살아낸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