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한 고백들에 대하여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신을 드러내며 살아간다. SNS 피드 속 웃는 사진, 그 아래 달린 짧은 글귀, 해시태그로 포장된 일상. 그것들이 곧 나라는 듯 흘러간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들은 거기에 없다. 끝내 올리지 못한 문장, 쓰다 지워버린 글, 보내지 못한 메시지. 그것들이야말로 내 삶의 진짜 무게를 이루고 있다. 나는 그것을 ‘비공개’라 부른다.
밤이 깊을수록 손끝은 자꾸 멈춘다. 키보드 위에 문장이 흘러나왔다가 곧 지워지고, 다시 쓰였다가 다시 지워진다. “잘 지내?”라는 세 글자를 적었다가 지우기를 수십 번.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모든 게 달라질까 두려워 결국 삭제한다.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말들. 하지만 묘하게도, 보이지 않는 그 기록들이 내 안에서는 가장 뜨겁게 타오른다. 사람들은 말한다. 솔직해야 한다고, 다 털어놓으라고.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솔직함이 언제나 용기가 아니듯, 비공개가 비겁함도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말하지 않고 삼켜버리는 것이 더 큰 용기일 때가 있다.
나는 한때 모든 것을 공개해야만 존재가 증명된다고 믿었다. 사람들에게 나의 하루를 알려야 살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개만으로는 나를 지킬 수 없었다. 빛 아래 모든 것을 내놓는 순간, 가장 여린 부분부터 상처 입었다. 그래서 나는 비공개라는 방을 만들었다. 그곳은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고, 누구도 판단하지 않는 자리. 가면을 벗고, 웃음 뒤에 감춰둔 눈물을 꺼내놓는 공간. 거기서야 비로소 나는 나였다.
거울을 볼 때마다 또 다른 얼굴이 나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입술은 웃고 있지만, 눈동자는 말이 없다. 그 속에 묻혀 있는 질문. “너는 정말 너로 살고 있느냐. 감춘 건 무엇이냐.” 대답은 늘 목구멍 끝에서 멈춘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질문 자체가 이미 내 고백이라는 걸. 거울 속 낯선 얼굴은 나의 비공개 알림 창이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해도, 나만은 그 신호를 읽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상처도 마찬가지다. 보이는 흉터는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지만, 마음에 새겨진 비공개 흉터는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 묻는다. “괜찮아졌어?” 나는 대답한다. “응, 괜찮아.” 하지만 그 말 뒤에는 언제나 또 다른 문장이 숨어 있다. ‘아직도 아파.’ 그러나 그 흉터가 늘 절망만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방향이 된다. 다시는 같은 길로 가지 않도록, 더 깊은 이해에 닿도록 이끄는 지도 같은 것. 말하지 않아도, 보여주지 않아도, 흉터는 내 안에서 의미를 길러낸다.
나는 종종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사진 폴더를 연다. 웃지 않는 얼굴, 흔들린 배경, 빛이 잘못 들어온 탓에 어둡게 찍힌 그림자. 지워버릴까 하다가 끝내 남겨둔 장면들. 그 이미지들은 내 안에 숨겨둔 꿈과 닮아 있다. 설명할 수 없고, 말할 수도 없지만, 여전히 꺼지지 않는 불씨. 바로 그 비공개 꿈이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누구에게도 닿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그래서 더 순수하다.
사람들은 공개된 모습으로 나를 기억할 것이다. 웃고 있는 사진, 다정하게 쓴 글, 밝아 보이는 순간들. 하지만 진짜 나는 그 틈새에서 살아간다. 닫아둔 문장, 감춰둔 눈물, 끝내 내놓지 못한 이야기. 그것들이야말로 나를 지탱한다. 공개는 세상 속의 나를 세우지만, 비공개는 나 자신을 지켜낸다. 둘은 함께여야 한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오래 설 수 없다.
나는 확신한다. 비공개는 도망이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언어다. 소리 없는 언어, 지워진 문장, 감춰둔 고백. 그러나 가장 깊은 울림은 거기서 온다. 말하지 않았음에도 분명히 들리는 진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음속 서랍을 닫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드러내지 않아도 괜찮아. 이 비공개가 바로 너라는 증거야.”
언젠가 내가 떠난 뒤에도 사람들은 내 공개된 기록만 읽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진짜 이야기는 드러나지 않은 곳에 남아 있다는 것을. 그것은 무덤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을 은밀한 별자리. 나는 오늘도 그 별을 바라본다. 이름 없는 빛, 비공개라는 이름의 빛. 그 빛이 있기에 나는 계속 걸어간다.
비공개는 숨김이 아니라 지켜냄이다. 말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살아 있는 언어. 나는 오늘도 공개와 비공개의 경계에서 서성인다. 한쪽은 세상 속의 나를 세우고, 다른 한쪽은 나를 나답게 지켜낸다. 그 두 세계가 함께할 때, 나는 비로소 나로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기록은 굳이 공개되지 않아도 된다. 비공개라는 이름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