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장|가을밤, 쓸쓸한 나르시시스트

거울 속 고백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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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 녹턴 제20번 c단조, Op. posth. “잊힌 사랑의 그림자”


가을밤, 나는 거울 속에서 낯선 적을 만났다. 그 적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낙엽이 흩날리고 바람이 서늘해질수록, 나는 거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가을은 모든 걸 벗기고 드러내는 계절이다. 나르시시스트의 눈빛은 그 벗겨진 풍경 속에서 더욱 쓸쓸히 흔들린다. 사람들은 나르시시스트를 오만한 자라고 말하지만, 내 안의 나르시시스트는 외롭고 허무한 그림자일 뿐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세상은 늘 변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고, 타인의 인정은 쉽게 부서졌다. 그래서 가을밤의 적막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그 사랑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차갑고도 서툰 애정이었다. 거울 속의 나는 늘 모순적이었다. 누군가의 시선을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그 시선이 두려워 고개를 돌리는 존재. 가을밤은 그 모순을 더욱 또렷하게 비춘다.

창문을 열면 싸늘한 바람이 밀려들었다. 불 꺼진 컴퓨터 화면이 거울처럼 내 얼굴을 반사했다. 그 위로 가로등 불빛이 겹쳐져 낯선 초상이 만들어졌다. 나는 그 낯선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나르시시스트의 응시는 끝내 오래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응시는 사랑과 혐오, 갈망과 두려움이 뒤엉킨 복잡한 감정의 늪이기 때문이다.

가을밤은 나르시시스트의 고백을 감춘다. 그러나 동시에 그 고백을 강요하기도 한다. 떨어지는 낙엽은 속삭인다. “너도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흔들리는 가지는 외친다. “너의 자존심은 바람 앞에서 얼마나 약한가.”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이상하게도 나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쓸쓸함은 나를 부수지 않았다. 오히려 살게 했다.

나는 기억한다. 누군가의 시선에 기대어 살던 시절을. 칭찬에 들뜨고, 무관심에 무너지고, 인정받지 못하면 한없이 초라해지던 시절을. 그래서 이제는 가을밤에 홀로 거울을 마주하는 시간을 택한다. 자기애가 아니면 생존할 수 없었던 나의 몸부림. 그것이 바로 쓸쓸한 나르시시스트의 방식이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느냐고. 하지만 나는 대답한다. “나는 집착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타인의 사랑을 믿지 못했기에, 나는 나 자신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만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가을밤의 적막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구원하려 애쓰고 있는 건 아닐까. 가을밤의 고요 속에서, 나는 나를 외면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것이 쓸쓸해 보여도, 그 애씀 속에서만 나는 숨을 이어갈 수 있다.

쓸쓸한 나르시시스트의 밤은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나는 나를 미워하면서도, 동시에 끌어안는다. 나는 나를 의심하면서도, 동시에 위로한다. 이 모순이야말로 인간다운 고백 아닐까. 사랑과 혐오가 공존하는 자리에서만 진짜 자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을밤은 그 자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계절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 쓸쓸함이야말로 나를 다시 내일로 이끄는 힘이라는 것을. 가을밤의 나르시시스트는 결코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초라하고 애달프다. 하지만 그 초라함 속에서 나는 글을 쓰고, 다시 사랑을 꿈꾸고, 내일을 기다린다. 쓸쓸한 나르시시즘이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가장 솔직한 불씨다.

가을밤, 쓸쓸한 나르시시스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나를 사랑하려 애쓰는 중이다. 나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여전히 애달프다. 그러나 이 쓸쓸함이야말로 나를 가장 인간답게 만든다.”
그 고백이 끝나자, 바람은 창문 틈으로 스며들어 내 곁에 오래 머물렀다. 마치 그 말이 진실임을 아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