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끝 위의 고백
새벽빛이 계단 위로 쏟아졌지만 심연은 여전히 숨을 토했다. 나는 하랑의 손을 잡고 위태롭게 서 있었다. 균열은 잠시 멎은 듯 보였으나, 저 아래서 형의 목소리가 다시 기어올랐다. “끝은 없다. 네가 빛을 택해도 칼끝은 결국 심장을 찾는다.”
하랑이 내 앞에 나섰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렸으나, 그 흔들림 속엔 불길이 남아 있었다. “현조, 내가 말할게.” 그녀는 심연을 향해 빈손을 뻗었다. “나는 널 사랑해 버렸다. 전생부터 지금까지. 그런데—” 그녀의 목소리가 끊겼다. “그 사랑만큼이나 복수가 내 안을 지배하고 있어. 아이를 잃게 한 그날 이후, 피 냄새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 말은 고백 같았으나, 동시에 자기 파멸을 드러내는 독백이었다. 나는 대답하려 했지만 형이 먼저 웃었다. “봐라. 사랑과 복수를 동시에 품는 자는 무너진다. 선택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의 눈은 여전히 붉게 타올랐다.
그 순간, 균열 사이에서 낯익은 숨결이 흘러나왔다. ―엄마. 아빠. 목소리는 작았으나 선명했다. 마치 오래전 울음을 삼키다 태어나지 못하고 스러진 영혼이, 전생의 그림자를 헤집고 나온 듯했다. 하랑의 몸이 순간 굳었다. 그녀가 떨리는 입술로 중얼거렸다. “그 아이…”
목소리는 다시 이어졌다. ―선택은 무너지는 게 아니야. 만드는 거야. 그 말에 바람이 달라지고, 균열에 걸린 그림자 손들이 형의 발목을 더 세게 조여 왔다. 형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비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만든다고? 죽은 영혼이 남긴 목소리 하나로? 결국 무덤이 다리가 될 리는 없다.”
하랑이 피투성이 얼굴로 웃었다. “무덤이라도 좋아. 내가 만든다면 누군가의 다리가 될 수 있어. 복수와 사랑 사이에서 흔들려도, 끝내 고백이니까.”
그때 등대 안에서 검은 손잡이가 또르르 굴러 나왔다. 칼날은 사라지고 손잡이만 남았다. 우리는 그것으로 벽에 문장을 새겼다. 살아. 흔들린다. 그러나 만든다.
벽은 새벽빛에 반짝이며 영혼의 울음을 품었다. 나는 하랑의 손을 더 꽉 잡았다. 그녀는 여전히 복수와 사랑 사이에서 갈라지고 있었지만, 그 흔들림조차 진실이었다. 칼끝 위의 고백은 완전한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생에서 태어나지 못한 영혼이 남긴 울음을 받아 적은, 우리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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