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죽음 사이
칼끝 위의 고백은 완전한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생에서 태어나지 못한 영혼이 남긴 울음을 받아 적은, 우리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시작은 언제나 피와 흔들림 위에서 태어난다.
하랑은 칼을 뽑아 들었다. 날카로운 끝이 내 목을 스쳤다. 차갑고 날 선 숨이 목덜미에 박히자,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렸다. 사랑과 복수, 두 불꽃이 눈동자 안에서 부딪쳤다.
“현조, 널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원망도 하고 있어. 그 모순이 나를 갈라먹는다. 그런 내가 괴물이 아닐까?” 그녀의 목소리는 떨림 속에서도 단단했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괴물이든 아니든, 네가 흔들린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야.” 짧게 잘라 말했지만, 그 순간 목에 닿은 칼끝은 내 대답을 시험하는 심판처럼 느껴졌다.
그때, 형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숨어 있지 않았다. 이미 우리 앞에 버젓이 서서,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사랑? 복수? 둘 다 부질없다. 결국 피와 울음으로 끝나지 않던가.” 그는 고의적으로 발밑의 균열을 밟아 붉은 액체가 튀게 만들었다. 졸렬했고, 뻔뻔했다.
하랑의 눈빛이 번쩍 흔들렸다. 칼끝이 내 목에서 천천히 떨어지더니, 곧장 형을 향했다. 그녀의 분노가 정확한 표적을 찾아간 것이다.
형은 어깨를 으쓱이며 비웃었다. “그래, 그게 옳지. 나를 겨눠라. 하지만 넌 결국 같은 피 위에 서게 될 거다. 사랑을 택해도 죽음을, 복수를 택해도 죽음을. 다르지 않다.” 그의 말은 저주처럼 흘러나왔다.
하랑의 손이 덜덜 떨렸다. 칼끝이 형의 목 앞에서 번뜩였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내가 겹쳐 있었다. 전생부터 이어온 사랑과, 잃어버린 아이의 원한이 한순간에 뒤엉켜 있었다.
그 순간 균열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죽이지 마. 아직 아니야. 태어나지 못한 영혼의 울음이, 그녀의 손끝을 붙잡은 듯했다. 칼끝이 형의 목 앞에서 멈췄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하랑, 형을 벤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야. 파멸의 뿌리는 이미 우리 안에 있어. 벤다면 잠시 속은 시원하겠지. 하지만 심연은 더 크게 웃을 거야.”
형이 코웃음을 쳤다. “봐라. 칼끝조차 흔들리잖아. 사랑과 복수 사이에 선 자는 결국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등대 벽에 새겨진 문장들이 햇빛에 반짝였다. 살아. 흔들린다. 그러나 만든다. 그 빛이 칼끝에 스며들며, 하랑의 떨림을 붙잡았다. 그녀는 피투성이 얼굴로 속삭였다. “나는 아직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어. 하지만 널 원망하면서도, 결국 형을 겨누고 있다는 게 내 대답이야. 나는 그 사이에 있어. 사랑과 죽음 사이.”
심연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균열 속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섞여 나왔다. 아이도, 형도 아닌 낯선 목소리.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