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피부
가려움은 단순히 피부가 보내는 신호가 아니다. 그건 마음의 언저리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처럼, 한 점의 고요마저 삼켜버리는 감각이다. 아침마다 거울 앞에 서면 낯선 얼굴이 나를 노려보았다. 어제보다 조금 덜 붉지만, 여전히 울퉁불퉁한 자국들이 내 피부 위에서 작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아무리 세수를 하고 싶어도 물 한 방울이 닿는 순간 따갑게 스며드는 통증이 날 막았다. 세면대 앞에서 손끝을 떨며 물을 올려다보는 그 몇 초가, 하루의 절망이 되었다.
약을 먹고 연고를 바르며 버텼다. 하지만 가려움은 약보다 끈질겼다. 아무리 조심해도 손끝이 자꾸 그곳을 향했다. 긁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건 참지 말라는 유혹과 같았다. 한순간의 쾌락과 긴 후회가 맞물린, 끝나지 않는 싸움. 어느 날은 이성을 잃은 채 긁고 또 긁었다. 손톱 밑에 묻은 미세한 피가 내 패배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그때부터 나는 외출을 멈췄다. 아니, 겁이 났다. 이 얼굴로 나가면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찌를 것만 같았다. 설령 밖에 나가야 할 일이 생기더라도 엘리베이터는 타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은 나를 비추는 게 아니라 나를 심문했다. 그 안에서는 누군가의 눈빛이 꼭 나를 향한 조명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비상계단을 탔다. 철제 손잡이를 꽉 잡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갔다. 숨죽인 발자국 소리마저 내 불안을 따라왔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쓰면 세상과의 거리가 조금은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가림이 아니라, 나 자신을 숨기는 행위였다.
피부의 고통은 마음의 고립으로 이어졌다. 타인의 눈을 피하는 동안 나는 스스로를 피했다. 얼굴에 남은 자국이 나의 결함처럼 느껴졌고, 내 존재 전체가 불완전하게 보였다. 누군가가 ‘괜찮다’고 말해줘도 그 말이 닿지 않았다. 몸이 보낸 신호는 이미 마음까지 잠식해 있었다.
밤이 되면 가려움은 한층 더 짙어졌다. 조용한 방 안,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오직 감각만이 살아났다. 손끝에서 시작된 불씨가 온몸을 따라 번졌다. 머리를 베개에 묻고, 손을 이불속에 감추며 참았다. 그러나 가려움은 고통이 아니라 ‘움직이는 고요’였다. 마치 내 안의 초조함이 살결로 옮겨온 듯했다. 참지 못한 어느 밤, 결국 나는 그 불길에 굴복했다. 긁는 순간의 해방감은 짧았고, 곧바로 스며드는 따가움이 뒤따랐다. 그 고통 속에서 알았다. 이건 단순한 피부병이 아니라, 나의 피로와 불안이 쌓여 터진 감정의 표면이라는 것을.
거울을 보면 눈빛이 예전 같지 않았다. 예전에는 빛나던 게, 이제는 움츠러든 듯 어딘가를 피하고 있었다. 거울 속 나는 말이 없었지만, 무언의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이제는 멈춰야 해.” 하지만 몸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약을 바를 때마다 약한 화학 냄새가 방 안에 퍼졌다. 그 냄새가 내 현실이었다. 익숙한 절망의 냄새, 매일의 반복이자 생존의 증거.
그러던 어느 날, 창문을 열었다. 찬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따갑지만 이상하게도 시원했다. 오랜만에 느낀 감각이었다. 바람은 내 피부를 괴롭히는 동시에 위로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이 가려움을 완전히 없애려는 데만 집중해 왔다는 걸. 하지만 그것은 내 몸이 보내는 언어였다. "지금 너무 힘들어." "조금만 쉬자." "너무 오래 참았어."
가려움은 내 몸이 낸 신호탄이었다. 몸이 보내는 메시지를 무시할수록, 그 신호는 더 거칠게 울렸다. 피로와 스트레스, 수면 부족, 작은 불안들. 그 모든 게 피부 위로 새어 나왔다. 눈에 보이는 상처만 고치려 했던 나는, 정작 마음의 염증은 방치하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붉은 자국들은 옅어졌다. 그러나 가려움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사라질 수 없는 감각인지도 모른다. 불안이 조금이라도 차오르면, 그 감각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두렵지는 않았다. 이제 나는 그 가려움을 두려움이 아닌 신호로 받아들였다. ‘아, 내가 아직 살아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견딜 수 있었다.
가려움은 나를 괴롭히지만, 동시에 나를 일깨웠다. 우리는 종종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무시한다. 눈이 아프면 화면을 조금만 더 보고, 손이 시리면 장갑 대신 인내를 택한다. 그렇게 쌓인 무시가 결국 몸의 항의로 돌아오는 것이다. 내 경우엔 그것이 모낭염이었다. 하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 무리와 참음의 대가였다.
이제는 거울을 봐도 덜 낯설다. 여전히 약을 바르고 조심하지만, 그 속도에 맞춰 살아가기로 했다. 완치가 아니라 공존의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몸과 마음이 서로를 이해할 때, 진짜 회복이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됐다.
어떤 날은 여전히 비상계단을 탔다. 습관처럼. 하지만 이제는 그 계단이 두렵지 않았다. 삐걱거리는 철제 소리 대신, 내 발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 소리가 마치 나를 응원하는 리듬 같았다. "괜찮아, 오늘도 잘 버티고 있어."
사람들은 말한다. 가려움은 단순한 증상이라고. 하지만 나는 안다. 그것은 삶의 잔향이다. 견디고, 버티고, 결국은 스스로 어루만져야 하는 과정. 가려움은 나에게 인내를 가르쳤고, 동시에 자신을 이해하는 법을 알려줬다.
이제 나는 긁지 않는다. 대신 숨을 고른다. 손끝 대신 마음으로 어루만진다. 그게 진짜 치유의 시작임을 믿는다.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지만,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마스크 아래 숨겨진 얼굴도, 거울 속 붉은 흔적도, 모두 내 일부로 받아들인다.
가려움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하지만 이제 그건 적이 아니다. 나를 깨우는 감각, 살아 있다는 증거, 그리고 내 안의 불씨다. 그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는 한, 나는 계속 나로서 살아갈 것이다.
오늘도 약을 바르고, 거울을 본다. 예전처럼 숨지 않는다. 창문을 열면 차가운 바람이 살결을 스친다. 그 바람 속에서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아직 조금 따갑고, 여전히 가렵지만, 그래도 괜찮다. 가려움은 사라질지언정, 그 시간을 견뎌낸 나의 흔적은 남을 테니까.
그리고 그 흔적은, 내가 살아온 증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