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방, 깨어 있는 방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릴 때면 나는 자동으로 숨을 죽인다. 금속이 맞부딪히는 ‘딸깍’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깨뜨릴까 봐, 귀마저 조심스러워진다. 시계는 새벽 두 시를 넘어 있다. 낮에는 분주한 사람들의 말소리로 가득하던 골목이 지금은 숨을 멈춘 듯 고요하다. 나는 그 고요를 좋아한다. 세상이 잠든 틈새에서, 오직 집의 미세한 숨소리만이 살아 있다.
욕실 쪽에서 불빛이 새어 나온다. 물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진다. 엄마다.
늦은 밤까지 영업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는, 아무리 피곤해도 꼭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야 눕는다. 손에 남은 세제 냄새, 머리카락 끝에 맺힌 물방울, 바닥을 스치는 수건의 부드러운 소리. 그 사소한 모든 소리들이 이 집의 하루를 정리하는 듯하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안심한다. 엄마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이, 그저 그 소리 하나로 증명된다. 불이 꺼지고, 발소리가 방으로 향한다. 젖은 머리카락이 어깨를 스치며 남긴 물방울이 바닥에 ‘톡톡’ 떨어진다. 그리고 문이 닫힌다. 그제야 집은 완전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다.
내 방은 그 옆이다. 우리는 각자의 방에서 잔다.
나는 예민해서,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나 작은 진동에도 쉽게 깬다. 그래서 엄마와 같은 방에서 잔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벽 하나를 사이에 둔 거리라 해도, 엄마의 존재는 늘 느껴진다. 벽 너머로 들려오는 숨소리, 이불이 살짝 움직이는 마찰음, 그리고 이따금 규칙적으로 이어지는 코 고는 소리.
처음엔 그 소리가 잠을 방해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그건 오히려 안심의 리듬이다. 하루를 다 건너온 사람의 호흡이, 이 밤의 집을 지탱하는 소리. 나는 그 리듬에 맞춰 눈을 감는다. 엄마가 코를 골 때면 나는 오히려 편해진다. ‘이제 괜찮구나. 엄마도 쉬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눅눅하게 풀린다.
책을 펼치면 글자가 마치 숨을 쉬는 듯 느리게 움직인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감촉, 책장을 넘길 때의 바스락 거림, 이 시간엔 모든 감각이 선명하다. 나는 소리 하나에도 예민한데, 이상하게도 이 시간엔 어떤 소리도 싫지 않다.
책 속의 문장이 나를 감싸고, 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그 문장 사이를 잇는다. 세상에서 가장 단조롭고, 그래서 가장 평화로운 음악 같다.
어느 땐, 그마저도 듣지 못할 만큼 깊은 잠에 빠진다.
엄마가 들어오는 소리도, 욕실의 물소리도, 불이 꺼지는 순간도.
그 모든 장면이 생략된 채, 나는 이미 꿈속에 있다.
그건 내 마음이 안심했다는 뜻이다. ‘오늘도 엄마가 돌아왔다’는 걸 더 이상 확인하지 않아도 알게 된 밤. 내가 들을 수 없을 만큼 깊이 잠든 건, 엄마의 하루가 무사히 끝났다는 신호 같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밤엔 나는 깨어 있다.
책을 읽다 멈추고, 문득 엄마의 방을 바라본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은 이제 없다.
그 안에는 단 한 사람의 숨만이 고요하게 머물러 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채워진다.
때로는 그 리듬이 잦아들고, 아주 고요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무심결에 귀를 더 세운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그 짧은 순간의 정적이 무겁게 느껴진다.
그러다 이내, 다시 일정한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그제야 미소를 짓는다.
이 작은 소리가 나를 다시 잠 속으로 데려간다.
밖에서는 새벽 첫 차가 지나간다. 도로 위로 미세한 진동이 흐른다.
세상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우리 집은 여전히 고요하다.
엄마는 잠들어 있고, 나는 그 고요의 문턱에서 깨어 있다.
가끔은 이 새벽이 마치 우리 둘만의 세계처럼 느껴진다.
서로 다른 방에서 각자의 피로를 내려놓으면서도, 묘하게 연결된 두 숨결.
불을 끄고 눈을 감는다.
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그건 멀어진 게 아니라, 내 잠 속으로 스며든 것이다.
나는 그 리듬을 따라 꿈을 꾼다.
낮에 웃던 엄마의 얼굴이, 시장길에서 장바구니를 들고 걷던 뒷모습이,
하루를 버텨낸 손끝이 그 꿈속에서 천천히 빛난다.
새벽 네 시 반쯤, 창밖이 옅은 회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벽시계 초침이 부드럽게 흘러간다.
나는 여전히 누워 있지만, 눈을 감은 채 그 모든 소리를 듣는다.
엄마의 숨, 내 심장 소리, 세상이 깨어나는 아주 미세한 떨림.
그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새벽의 합창이다.
이따금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거리가 필요하다고,
그 거리는 냉담이 아니라 배려일 때 더 따뜻하다고.
엄마의 방과 나의 방 사이엔 벽이 있지만, 그건 벽이 아니라 다정한 간격이다.
서로의 잠을 지켜주는 거리, 깨우지 않기 위한 사랑의 공간.
우리는 그 안에서 각자의 꿈을 꾸며, 서로를 잃지 않는다.
오늘 밤도 그럴 것이다.
엄마는 씻고, 머리를 말리고, 불을 끄고, 곤히 잠들겠지.
나는 책을 읽다, 문득 눈이 무거워질 때쯤 불을 끄고 누울 것이다.
그리고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숨소리를 들으며 생각하겠지.
‘괜찮아, 엄마는 자고 있어. 이제 나도 자도 돼.’
그렇게 우리는 같은 집 안에서 각자의 평화를 얻는다.
한쪽은 잠든 방, 한쪽은 깨어 있는 방.
하지만 그 둘은 결국 하나의 마음으로 이어진다.
소리 대신 숨으로 이어진, 조용한 사랑의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