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질꼬질

닦아도 남는 온기, 함께 사는 삶의 흔적

by Helia

우리 집은 조금 꼬질꼬질하다. 거실엔 청소기 전선이 늘 길게 뻗어 있고, 싱크대 옆엔 엄마의 고무장갑이 젖은 채 걸려 있다. 창가 유리엔 먼지가 앉아 반쯤 가려진 햇살이 들어오고, 식탁 위에는 내가 치우지 않은 컵이 남아 있다. 그래도 이상하게 따뜻하다. 반짝이지 않아도 괜찮은 집, 살아 있는 집이다.

나는 엄마와 함께 산다.
청소는 내가 주로 한다. 거실, 부엌, 방, 세탁까지. 하지만 화장실 청소만큼은 엄마 담당이다. 그건 오랫동안 이어져 온 암묵적인 약속이다.
“엄마, 그건 내가 할게.”
“아니야, 화장실은 내가 해.”
이 대화는 늘 비슷하다. 나는 그냥 역할분담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다. 엄마에게 화장실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 같은 곳이라는 걸.

엄마는 청소할 때 언제나 조용하다. 고무장갑을 끼고, 솔을 든다. 바닥을 쓸고 물을 틀면, 욕실 안에서 쩍쩍 소리가 난다. 그 소리가 나면 나는 거실 구석을 닦기 시작한다. 청소는 대화가 없는데도 이상하게 서로의 리듬이 맞는다. 그게 우리 집의 방식이다.

엄마는 늘 반듯함을 추구한다. 먼지가 조금만 쌓여도 불편하단다. 나는 조금 어질러진 게 좋다. 책이 쌓이고, 의자 위에 옷이 덮인 채로 있어야 편하다. 그래서 자주 부딪힌다.
“너는 도대체 왜 이렇게 대충 살아?”
“엄마, 인생은 원래 대충 사는 거래.”
“그게 무슨 말이야. 꼬질꼬질하게 살면 마음도 꼬질꼬질해져.”
“아니야, 나는 오히려 편한데?”

그 말을 하고 나면, 잠시 정적이 흐른다.
나는 걸레를 들고 한쪽 구석을 닦고, 엄마는 여전히 화장실 안에서 물을 뿌린다. 물소리가 벽을 타고 울릴 때, 나는 그게 잔소리보다 더 다정하게 들린다.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를 닦아내는 시간 같달까.

엄마는 가끔 말한다.
“화장실은 마음이 제일 먼저 드러나는 곳이야.”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깨끗하게 보이려 애쓰는 거실보다, 물때가 남은 곳을 닦는 게 더 어렵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늘 그 일을 놓지 않는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배운다. 깔끔하게 보이려는 삶보다, 더러워질 수 있는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가끔 청소를 멈추고 엄마를 본다. 좁은 욕실 안에서 허리를 숙이고 솔질하는 모습. 손끝엔 세제가 남고, 손등은 거칠다. 예전엔 그 손이 왜 저리 바쁜지 이해 못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누군가는 늘 묵묵히 움직여야 집이 돌아간다는 걸.

엄마는 닦고 또 닦는다.
나는 정리하고 또 어질러놓는다.
우린 서로 다른 속도로 살아가지만, 결국 같은 곳으로 돌아온다. 저녁이 되면 나는 다시 거실을 쓸고, 엄마는 욕실 문을 닫으며 말한다.
“오늘도 한 판 했네.”
그 말에 나는 웃는다.
“엄마 덕에 집이 살아 있잖아.”

어릴 땐 엄마가 청소하는 걸 이해 못 했다. 늘 바쁘게 움직이고, 깨끗한 집을 만들려 애쓰는 모습이 답답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움직임이 고맙다. 엄마의 청소는 닦아내는 게 아니라 지켜내는 일이라는 걸 이제야 안다.

나는 여전히 대충 산다.
먼지를 닦다 멈추고, 소파에 누워 있다가 다시 일어나고, 설거지를 하다 말고 멍하니 창밖을 본다. 그러면 엄마는 늘 한마디 한다.
“그렇게 하다간 평생 다 못 치워.”
“괜찮아, 어차피 내일 또 더러워질 텐데.”
그 말에 엄마가 한숨을 쉬다가도, 피식 웃는다.
그 웃음은 포기라기보다 인정에 가깝다.
우린 결국 같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닦아도 다시 어질러지는 인생을, 조금은 웃으며 받아들이는 사람들.

청소가 끝나면 집 안은 잠시 고요해진다. 깨끗한 집은 좋지만, 너무 반듯하면 불편하다. 먼지 하나 없는 바닥은 쉽게 금이 가고, 윤기 나는 유리는 자국이 잘 남는다. 나는 약간 어질러진 게 좋다. 완벽하지 않은 공간에 사람의 냄새가 배니까.

엄마는 여전히 내 방 문을 열고 말한다.
“여긴 왜 이렇게 꼬질꼬질해.”
“엄마, 그게 내 스타일이야.”
그러면 엄마가 혀를 찬다.
“스타일은 스타일이고, 이건 그냥 더러운 거야.”
그 말에 나도 웃는다. 싸움처럼 시작된 대화가 늘 웃음으로 끝난다.

꼬질꼬질하다는 건 게으름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함께 살아간 흔적이다.
서로 닦고, 어질러놓고, 잔소리하고, 다시 웃는다.
그게 우리 집의 리듬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비슷하다. 깨끗이 정리되는 날은 드물다. 오해와 감정이 남고, 말하지 못한 마음이 구석에 쌓인다. 그래도 괜찮다. 매일 조금씩 닦아가면 된다. 완벽한 하루가 아니라, 덜 지저분한 하루면 충분하다.

밤이 되면 엄마는 청소 도구를 제자리에 놓고, 나는 청소기를 멈춘다. 물소리가 끊기면 집안은 조용해진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엔 묘한 따뜻함이 있다. 하루 종일 닦고 어질렀던 우리가 결국 같은 공간에 앉아 있다는 사실. 그게 참 좋다.

살다 보면 누구나 꼬질꼬질해진다. 마음에도, 관계에도, 생활에도 얼룩이 남는다. 완벽히 깨끗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닦아내는 일이 아니라, 닦아가며 사는 일이다.
엄마는 여전히 화장실을 닦고, 나는 거실을 치운다. 서로의 소리가 벽을 넘어 섞인다. 그 소리들이 오늘 하루의 기록이다.

완벽히 닦인 삶보다, 조금 먼지 앉은 사랑이 더 오래간다.
우리는 오늘도 꼬질꼬질하게, 그러나 따뜻하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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