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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땅 위로 향하는 길

by Helia

그의 발자국 뒤로, 봄이 따라왔다.

밤새 불던 바람이 잦아들었다.
연못은 잠든 듯 고요했지만, 그 고요 속에서 미세한 진동이 피어올랐다.
물 위에는 아직 식지 않은 햇살이 남아 있었다.
두꺼비는 고개를 들었다.
비가 그친 지 이틀째, 공기에는 여전히 젖은 흙냄새가 맴돌았다.
그 냄새는 낯설고 따뜻했다.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이 한 호흡 안에 섞여 있었다.

연못가의 풀잎이 흔들렸다.
작은 그림자가 그 사이를 스쳤다.
아기 두꺼비였다.
그는 오랫동안 머물던 물가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별처럼 반짝이던 물방울, 그리고 아직 마르지 않은 봄비의 흔적이 있었다.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나아갈 때야.”

발끝이 흙을 스쳤다.
미세한 감촉이 전해졌다.
겨울 내내 차갑던 물의 기억이 사라지고, 따뜻한 땅의 온기가 손끝처럼 느껴졌다.
그는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물방울이 떨어지고, 흙먼지가 일었다.
그 냄새는 세상 밖의 냄새였다.

풀잎 아래에서 또 다른 두꺼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눈빛이 마주쳤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마음속엔 같은 약속이 있었다.
살아남았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것.

진흙 위로 햇살이 내리쬐었다.
아기 두꺼비는 처음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보았다.
물 위에서 비치던 흔들리는 그림자가 아니라,
단단한 땅 위에 서 있는 그림자였다.
그는 잠시 멈춰 섰다.
작은 몸이었지만, 세상이 그를 중심으로 천천히 회전하는 듯했다.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숲의 냄새를 싫어왔다.
낯선 꽃의 향기, 젖은 나무껍질의 냄새, 그리고 먼 곳에서 들려오는 새의 울음소리.
그 모든 것이 두꺼비의 귀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는 세상에 처음 인사하듯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넓었고, 햇살은 따뜻했다.

두꺼비들은 하나둘 모여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물가에서부터 숲 가장자리까지 이어지는 작은 발자국들이 생겼다.
그 길 위에는 젖은 진흙과 햇살, 그리고 살아 있는 숨결이 뒤섞였다.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때로는 미끄러졌고, 때로는 잠시 멈춰 숨을 골랐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길의 끝엔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해가 기울며 숲은 금빛으로 물들었다.
두꺼비들은 조용히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의 등 위로 빛이 내려앉았다.
그 순간, 아기 두꺼비는 뒤돌아 연못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태어난 물결이 아직도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아주 짧게 중얼거렸다.
“고마워, 그리고 잘 있어.”

그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바람이 잎사귀를 스쳤고, 햇살이 길 위를 환하게 밝혔다.
그는 한 걸음 더 내디뎠다.
발끝에서 흙이 무너지고, 작은 물결처럼 먼지가 흩어졌다.
그 냄새는 봄의 냄새였다.

연못은 멀어지고, 숲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두꺼비의 발자국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 뒤로, 젖은 바람과 함께 봄이 따라왔다.

처음 걷는 세상은 낯설지만,
그 발자국 위로 또 다른 생명이 자라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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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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