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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달빛의 주소

by Helia

밤은 유난히 고요했다. 루네는 펜을 내려놓고 방금 쓴 문장을 읽었다.

> “당신이라면, 어떤 봄을 다시 불러내고 싶나요?”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달빛이 창문을 스쳤다.
별사탕 병이 흔들리며 찰랑— 작은 울림을 냈다.
루네는 그 소리를 들으며 속삭였다.
“이건… 아직 도착하지 못한 마음의 흔들림이야.”

포노가 고개를 들었다.
“또 편지가 온 거야?”
“응, 그런데 이상해. 이번엔 너무 오래된 향기가 나.”

그녀가 별사탕 병을 열자, 희미한 빛 조각 하나가 떠올랐다.
오랜 시간 바래진 빛, 잊힌 기억의 냄새가 났다.
루네는 봉투를 펼쳤다. 달빛 잉크가 다시 살아나며 문장이 그려졌다.

> “돌아갈 수 없는 곳이 있다면, 그건 내가 남겨둔 마음이 머무는 자리일 거예요.”

루네는 숨을 멈췄다.
“포노, 이건… 내 이름으로 되어 있어.”
그의 금빛 눈동자가 반짝였다.
“네 이름?”
“그래. 내가 보낸 편지야. 하지만 기억나지 않아.”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감싸며 잔잔히 흔들렸다.
그녀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아마 내가… 마지막으로 울던 밤일지도 몰라.”
잠시 침묵. 포노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사람의 외로움은 달빛보다 오래 남는다고 하잖아.
아마 그때의 네가, 지금의 너에게 편지를 보낸 거겠지.”

루네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 “그날, 나는 마지막 편지를 부치지 못했어.
마음이 너무 커서, 봉투가 닫히지 않았거든.”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잊은 줄 알았는데, 달빛은 다 기억하고 있었네.”

포노는 살짝 미소 지었다.
“달빛은 잊은 마음을 대신 기억해 주는 가장 오래된 기록자야.”
그 한마디에 루네의 눈가가 젖었다.

그녀는 별사탕 병을 꺼내 손바닥에 올렸다.
“이제 이 편지를 다시 보내야겠어.”
“어디로?”
“시간의 반대편. 아직 나를 잊지 않은 어느 순간으로.”

그녀가 병을 열자, 별빛이 폭발하듯 흩어졌다.
은하의 길이 창문 밖으로 이어졌고, 그 끝에는 어린 루네의 모습이 있었다.
소녀 루네는 웃고 있었다.
포노는 속삭였다.
“이제 네 편지도 도착했네.”

루네는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래, 나도 잊지 않았어.”

그녀는 펜을 들어 새 문장을 썼다.

> “편지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가는 순환의 길이에요.”
그리고 잉크가 마르기 전, 한 줄을 더 덧붙였다.
“사람의 마음은 사라지지 않아. 다만, 돌아갈 주소를 잠시 잃을 뿐이야.”

별사탕 우체국의 종이 울렸다.
그 소리는 오래된 시간의 문을 두드리는 듯했다.

루네는 하늘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이제야 알겠어. 편지는 결국, 기다림의 다른 이름이었어.”

그녀의 손끝에서 마지막 별사탕 하나가 떠올랐다.

> “당신이라면, 어떤 마음을 지금 보내고 싶나요?”

달빛이 그 문장을 감싸며 천천히 번졌다.
그리고 아주 멀리서, 또 하나의 편지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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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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