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야’가 아니다
야.
단 한 글자에 마음이 다쳐본 적 있나요?
누군가 아무렇지 않게 던진 그 소리 하나가, 하루 종일 귓가에 맴돌 때가 있다.
내 이름이 분명 있는데, 왜 굳이 그렇게 불러야 할까.
내 이름 석 자는 장식이 아니고, 존재의 증표인데.
“야!”
짧지만 강한 그 한 글자엔, 무심함이 숨어 있다.
그 말은 부름이 아니라, 명령처럼 들릴 때가 있다.
내가 아닌 ‘아무나’를 향해 던져진 소리.
나는 그 말에 늘 작아졌다.
이름이 사라지면 존재도 함께 흐려지는 법이다.
어릴 때는 몰랐다.
친구들이 “야, 놀자!” 하고 부르면 나도 “야!” 하며 웃었다.
그게 친근함의 언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커가면서 알게 됐다.
진짜 가까운 사이라면, 더 다정하게 불러야 한다는 걸.
가까울수록 조심해야 하는 말들이 있다.
호칭은 관계의 온도를 결정한다.
회사에서 일하던 시절, 회의 중에 한 선배가 내게 소리쳤다.
“야, 그거 보고서 준비됐어?”
순간, 주변 시선이 나를 향했다.
이름 대신 던져진 그 말은 명찰처럼 붙었다.
그날 이후, 그 선배의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일의 문제보다, 존중이 무너진 관계가 더 불편했다.
이름이 아닌 ‘야’로 불린 순간부터 나는 사람 아닌 기능처럼 느껴졌다.
연인에게도 그 말은 상처였다.
“야, 이리 와봐.”
말끝에 웃음이 실려 있어도 이상하게 마음이 식었다.
‘혜지야’라고 불렀을 땐 따뜻했는데,
‘야’라고 부르자 관계가 순식간에 거칠어졌다.
사랑한다는 말도, 존중이 빠지면 감정이 금세 닳는다.
이름이 사라진 사랑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얻은 나의 서명이다.
부모가 오랜 고민 끝에 지어준 그 이름엔
사랑과 염원이 한 겹씩 쌓여 있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지워버리는 건, 나를 가볍게 대하는 일이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건, 그 사람을 하나의 세계로 인정하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주 말한다.
“그냥 말버릇이야. 편해서 그래.”
하지만 ‘그냥’이란 말이야말로 가장 무심한 변명이다.
‘그냥’이라 부르는 순간, 상대를 향한 존중은 사라진다.
그냥 부르고, 그냥 지나치고, 그냥 상처 입힌다.
그냥은 언제나 관계를 조금씩 무너뜨린다.
한 번은 친구에게 정중히 말했다.
“나한테 ‘야’라고 하지 말아 줘.”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그게 뭐 어때서?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예민해졌어?”
그 말이 더 아팠다.
예민한 게 아니라, 존중받고 싶은 거라고.
가까움이 무례의 면허증은 아니라고.
진짜 친구라면, 서로의 이름을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지하철 안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자주 들린다.
“야, 빨리 와!”
“야, 너 그거 봤어?”
아무리 사람 많은 곳이라도, 그 소리엔 특정한 온도가 없다.
누구를 향하는 건지, 어떤 마음인지 모를 그 무심함 속에서
이름은 점점 사라지고, 사람들은 서로를 쉽게 부른다.
호칭이 가벼워지면 관계도 쉽게 흐트러진다.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호칭은 마음의 방향이다.
그 말이 향하는 곳이 진심이라면,
부르는 순간 그 사람의 존재가 또렷해진다.
“혜지야.”
그 이름이 내 귀에 닿을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건 나를 인정해 주는 소리이자,
하루를 버틸 힘이 되는 다정한 불빛이다.
말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태도가 된다.
‘야’가 먼저 입에 오르는 사람은 무심함에 익숙한 사람이고,
이름을 부를 줄 아는 사람은 관계의 결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제 누군가를 부를 때, 한 박자 숨을 고른다.
그 호흡 하나가 예의가 된다.
이름을 부르기 전에 마음을 정돈하는 습관,
그게 사람 사이의 온도를 바꾸는 시작이다.
가끔 나 자신에게도 말한다.
“혜지야, 괜찮아.”
그건 단지 위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존중하는 일이다.
누구에게도 함부로 불리지 않겠다는 다짐.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세상도 날 가볍게 대한다.
이름을 지킨다는 건 나를 지키는 일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야, 그냥 장난이지.”
하지만 장난과 무례는 종이 한 장 차이다.
그 장난 속에서 누군가는 웃지만, 누군가는 상처받는다.
부름 하나에도 마음의 결이 있다.
호칭은 관계의 첫 문장이니까.
“야”로 시작한 말은 금방 끝나지만,
“이름”으로 시작한 말은 오래 남는다.
이름은 관계의 뿌리이자 존중의 씨앗이다.
그걸 잃으면,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모른 척하게 된다.
말의 얼굴은 호칭이고, 호칭의 온도는 곧 마음의 온도다.
서로를 어떻게 부르는지가,
사람의 품격을 결정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을 아껴야 한다.
함부로 내뱉지 말고,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
우정도, 사랑도, 존중이라는 틀 안에서 자라야 오래간다.
부르는 말이 곧 마음의 모양이니까.
이제 나는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줄 때,
그 소리를 천천히 음미한다.
‘혜지야’라는 세 글자 속에 담긴 모든 온기와 시간들을 떠올리며.
그 이름이 나를 지켜왔고, 앞으로도 나를 일으킬 것이다.
누군가 아무렇지 않게 “야!” 하고 부를 때,
나는 속으로 조용히 대답한다.
“내 이름이 있어요.”
그건 화가 아니라 선언이다.
존중받고 싶은 사람의, 조용하지만 단단한 선언.
세상에 이름 없는 존재는 없다.
그러니 제발, 함부로 부르지 말아 달라.
내 이름 석 자는 폼으로 있는 게 아니다.
그건 나의 첫 존중이고, 나의 마지막 존엄이다.
오늘도 나는 나를 부른다.
“혜지야, 괜찮아. 너는 네 이름으로 충분해.”
‘야’라는 소리에 멈춰 서지 않고,
내 이름으로 불리며 다시 걸어간다.
그 길 끝에서 나는 나로 선다.
존중받는 사람으로, 다정한 말의 세계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