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흔들리는 증언의 밤

by Helia

그곳에서, 두 사람이 오래도록 묵힌 시간들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매화 정류장에 내려앉던 평온은 잠시뿐이었고,
바람의 결에 스치는 꽃잎 하나가 떨어지는 순간,
현숙의 머릿속 깊은 곳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장면들이
서서히, 그러나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장면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시작된다.
사이렌 소리다.
멀리서부터 울리며 가까워지는 번쩍임.
골목 끝을 하얗게 가르던 경찰차의 불빛.
그리고 그 안에 몸을 웅크린 열 살의 나.

경찰차 문이 닫히는 순간,
아이는 세상이 점점 자기와 멀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엄마는 구급차에 실려갔고,
아빠는 다른 들것에 옮겨졌다.
아이는 혼자였다.
성인도 아닌, 그렇다고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닌
그 애매한 ‘열 살’이라는 나이에,
세상은 너무 잔인하게도 ‘책임’을 요구했다.

경찰차 뒷좌석은 이상하리만큼 차가웠다.
등이 닿는 시트마저 딱딱했고
아이의 작은 손은 담요를 감싸 쥔 채로 떨렸다.
담요의 끝은 따뜻하지 않았다.
그저 공포를 가리기 위한 모양뿐이었다.

경찰은 여러 번 말했다.
“괜찮아. 네 잘못 아니야.”
“겁먹지 마.”
그러나 아이는 그 말 뒤에 숨겨진 억양을 듣지 못했다.
입술을 꽉 깨문 채,
손등만 바라보고 있었다.
손등에는 미세하게 붉은 선이 남아 있었다.
골프채를 쥘 때 생긴 자국이었다.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이미 새벽을 넘어서고 있었다.
하얀 형광등이 천장에 길게 켜져 있었고
아이의 그림자가 바닥에 얇게 늘어져 흔들렸다.
조사실로 바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열 살 아이를 위한 작은 보호실—
의자 하나, 책상 하나, 휴지 상자 하나뿐인 공간으로 옮겨졌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아이에게는 또 하나의 단절처럼 느껴졌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그 질문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몸 전체가 그렇게 물었다.

잠시 후, 복도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급박하고, 떨리고, 숨 가쁜 발걸음.
그리고 문이 벌컥 열렸다.

“현숙아!”

이모였다.
손에 가방을 들고 있지도 않았고
머리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처럼 헝클어져 있었다.
옷도 대충 걸친 듯 보였고
신발은 급히 신고 나오느라 뒤축이 접혀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이모의 얼굴이었다.
잔뜩 굳은 표정, 이미 울음을 꾹 누른 얼굴,
동생의 아이를 찾아 헤매던 두려움이 묻은 얼굴.

이모는 아이에게 달려들다시피 와서
작은 몸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현숙은 그제야 몸을 조금 움직였다.
얼마나 오래 몸을 움츠리고 있었는지
허리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 아기.”
이모가 말했다.
목소리는 떨려 있었지만
손길만큼은 정확하게 아이의 등을 쓸어내렸다.
아이는 숨을 겨우 들이켜며 이모 품에 얼굴을 묻었다.
울음이 터지지 않았지만
숨 쉴 때마다 목이 쫙쫙 긁히는 것 같았다.

이모는 아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아주 분명한 발음으로 말했다.

“현숙아,
너 잘못 하나도 없어.”

아이는 입술을 떨며 고개를 저었다.
“나… 내가 그랬어…
아빠…
엄마가…”
말끝이 흐려졌다.

이모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이의 두 볼을 감싼 손이
더 강하게 아이를 붙잡았다.

“너 아니었으면,
네 엄마는 그날 살아 있지 못했어.”

그 말은
아이의 귀가 아니라
가슴 한가운데 떨어졌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번졌다.

“정말 잘했어.
그 나이에…
그 순간에…
너 아니면 아무도 못했어.”

그 말에
아이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목을 울리는 울음이 아니라
눈에서 흘러내리는 조용한 울음.
숨과 함께 밀려 나오는 떨림.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무겁고 아픈 울음.

이모는 아이를 꽉 끌어안았다.
경찰들과 아동보호 요원들은
그 둘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아꼈다.
누구도 방해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만큼 배려 깊지 않았다.

경찰서 밖에는 이미
마을 사람 몇이 모여 있었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
소문을 가장 먼저 듣는 사람들.
브라운관처럼 켜진 경찰청사 형광등 아래
그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애가 그랬다며.”
“열 살이라더라.”
“아무리 그래도 아빠를…”
“엄마도 문제야. 맞고만 산 게 말이 되냐.”
“원래 그 집이 좀…”

말끝마다
칼처럼 얇고 매서운 가시가 박혀 있었다.

이모는 문틈으로 들리는 수군거림을 들으며
턱을 꽉 물었다.
아이를 감싸 쥔 팔에 힘이 더 들어갔다.

잠시 후
경찰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 상태가…
굉장히 좋지 않습니다.
… 뇌 기능 반응이 거의 없습니다.”

이모의 어깨가 서서히 내려앉았다.
의료인이었던 이모는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뇌사.

살아 있다는 말도,
죽었다는 말도 아닌
가장 잔인한 중간지대.

이모는 아이에게 그 말을 그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대신 손등을 한 번 쓰다듬고
조용히 말했다.

“현숙아,
우리 이제 병원 가자.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경찰서 문을 나서는데
날카로운 새벽공기가
아이의 뺨을 스쳤다.
차가운 공기 속에
비난의 시선들이 실려 있었다.
어디로 가도, 누구를 봐도
아이는 그 눈길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모는
단 한순간도
아이의 손을 놓지 않았다.
꼭, 아주 꽉 잡고
바람을 헤치며 걸어갔다.

그 순간부터
현숙의 시간은
더 이상 ‘어린아이의 시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밤의 공기 속에서
열 살짜리 아이의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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