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마주한 날(수정본)

by Helia

그 밤의 공기 속에서
열 살짜리 아이의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되고 있었다.
경찰서 문을 나서던 순간,
현숙은 이모 손을 꼭 잡은 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걷고 있었다.

희뿌연 새벽빛이 골목 사이로 퍼져 나오고 있었고,
마을 끝에서부터 들려오던 닭 울음소리가
그날따라 유난히 공허해 보였다.

둘은 말없이 택시에 올라탔다.
이모는 차 문을 닫는 순간
손을 덜덜 떨었다.
겨우 스무 살을 넘긴 젊은 얼굴이었지만,
그 표정은 이미 한밤을 몇 번이나 지나온 사람처럼 피곤하고 아파 보였다.

이모는 말없이 아이의 손을 덮어 잡았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것처럼,
그 단단한 손길이 아이의 손등 위에서 조용히 떨리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새벽 공기는 아직 차가웠다.
유리문이 열리며 소독약 냄새가 강하게 밀려왔다.
그 냄새는 마치 그날 밤의 잔해처럼
아이의 가슴 깊은 곳에 쑥 들어왔다.

응급실 복도는
사람들의 숨과 울음, 무표정함이 뒤섞여
어디에도 기댈 데 없는 공간이었다.
벽에는 오래된 안내 게시물이 붙어 있었고,
형광등은 이상하게 더 하얗고 더 차가운 빛을 뿜고 있었다.

이모가 급히 뛰어가 의사를 붙잡았다.
“우리 언니는요? 그러고… 최준석 환자는요?”

의사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정금례 님은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충격이 크고 출혈이 있었지만
곧 안정 찾았습니다.
지금은 쉬고 계세요.”

이모는 안도의 숨을 내쉴 겨를도 없이
곧 이어진 말에 굳어버렸다.

“최준석 환자분은…
뇌간 반응이 없습니다.”

그 말은 공기 속에 천천히 가라앉아
두 사람의 숨을 막았다.

“지금은 기계호흡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자발 호흡은 없고…
빛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모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젊지만 병원 근무 경력이 있었던 그녀는
의학적 설명이 필요 없었다.

뇌사.
돌아오지 못하는 강의 중간쯤에서 멈춰버린 어떤 생.
시간은 흐르는데, 그 사람만 혼자 멈춰 있는 상태.

현숙은 그 말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모의 표정,
의사의 숨소리,
그리고 복도 끝 창문에 비친 회색 하늘이
그 의미를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

엄마의 병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흐린 조명 아래
엄마는 천장 쪽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입술은 말라 갈라져 있었고
눈가엔 울다 마른 흔적이 남아 있었다.

현숙이 발끝으로 조심히 다가가
작게 말했다.

“… 엄마.”

엄마의 눈이 천천히 떨렸다.
그리고 아이의 얼굴이 보이자
얼굴이 무너졌다.

“현숙아…
우리 딸…”

목소리는 거의 바람이 스치는 듯 희미했다.
엄마의 손이 아이의 손을 찾았다.
힘없이 떨리는 손가락이
아이의 손끝을 간신히 스쳤다.

그 손이 닿자
현숙의 무릎이 흔들렸다.
미안함, 두려움, 안도, 공포…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와
숨이 턱 조여왔기 때문이다.

아이는 울음을 참으려 했지만
엄마가 먼저 울기 시작했다.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눈물이 베개에 스며들며 번졌다.

“엄마 잘못 아니야…”
현숙은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내가 잘못했어…
네 앞에서… 그동안… 아무것도 못 했어…”

그 말은
현숙의 심장을 가장 깊이 찌르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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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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