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마음은 닿을 사람에게만 열린다

by Helia

마음은 손바닥에 잠시 머무는 빛 같다. 잡으려 들면 금세 흩어지고, 가만히 올려두면 그제야 제 윤곽을 드러낸다. 나는 오랫동안 사람들이 내 마음과 비슷하리라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생김새도 다르고 자라온 시간도 제각각인데 마음만큼은 어딘가 닿아 있을 거라는 순진한 기대. 누군가에게 진심을 내어주면, 그 진심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최소한 소중히 다뤄지리라는 막연한 믿음. 하지만 마음은 인간의 언어 중 가장 해석이 어려운 문장이었고, 그 문장을 읽는 방식은 사람마다 너무나 달랐다.

어릴 땐 마음이 단순했다. 좋아하면 좋다고 말하고,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표현하며 살았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마음은 자꾸만 에둘러가야 하는 문장이 됐다. 말을 아껴야 했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계산해야 했고, 때로는 애써 모르는 척해야 했다. 사람은 다 다르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특히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고 난 뒤, 그 마음이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볼 때면 더욱더.


처음엔 다들 고마워한다. 작은 친절에도 미소로 답해주고, 사소한 배려에도 “네 마음 알지”라며 따뜻한 말 한마디를 얹어준다. 그때 나는 그 말들을 전부 믿었다. 내 마음이 닿았구나, 소중히 여기고 있구나, 이 따뜻함이 오래가겠구나.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온기가 사라진다. 똑같이 건넨 배려가 당연시되기 시작하고, 예전엔 미소로 받던 작은 정성이 이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처럼 변해버린다. 마음이야말로 가장 귀한 선물인데, 시간이 지나면 종종 의무처럼 둔갑한다.


나는 그런 변화를 기가 막히게 먼저 알아본다. 답장의 속도가 느려지고, 말투 하나가 어딘가 삐걱대고, 감정의 결이 예전과 달라질 때, 마음 안쪽 깊숙한 곳에서 작은 기척이 일어난다. ‘아, 이 사람은 이제 내 마음의 무게를 잊었구나.’ 그 순간의 씁쓸함은 말로 다 하지 못한다. 고마움이 당연함으로 바뀌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또 마음을 내어주고, 또 희망한다. 언젠가 한 번쯤은, 그 마음을 진심으로 바라봐주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리라고.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나도 그렇다. 나의 마음을, 나의 온도를, 나의 방식으로 상대가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런데 상대도 똑같다. 그들도 제 나름의 상처와 기억을 품고 살아간다. 그래서 마음의 온도는 언제나 조금씩 다르고, 그 차이는 때때로 서운함과 오해를 만들고, 관계를 금 가게 한다. 이해의 부족이 아니라, 방식의 차이가 문제였다.


내가 마음을 줄 때는 온기를 담았지만, 그들이 그것을 받을 때는 편한 그릇으로 받아들였던 것뿐. 때로는 이용당하기도 했다. 세심하게 챙겨주면, 그 따뜻함을 당연한 배경처럼 사용하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음이 너무 빨리 열리면 누군가에게는 손잡이가 되기도 한다. 잡아당기기 쉬운, 이용하기 좋은 손잡이. 그리고 사람이 떠난 뒤에는 마음만 덩그러니 남아 방 안을 어지럽힌다. 나는 혼자 그 마음을 치우며 서성였다. 깨지고 흩어진 마음 조각들을 주워 담으면서, 다시는 이런 식으로 온 마음을 내어주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마음이란 게 그렇다. 다치면 움츠러드는 것 같아도 결국 다시 누군가에게로 향한다. 그게 사람이다. 아프면서 배우고, 실망하면서 성장하고, 멀어지면서 비워진 자리에 새로운 온기를 들인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프게, 그러나 분명히 배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의 마음이 어떻게 다뤄져야 하는지도 천천히 깨닫고 있다.


이제 나는 마음을 아무에게나 던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두꺼운 벽을 세우며 단단하게 무장이 된 것도 아니다. 다만 마음을 건넬 때의 속도가 예전보다 느려졌고, 상대가 그 마음을 어떻게 받는지 지켜볼 여유가 생겼다. 마음이라는 건 서로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것이다. 잡아당기거나 움켜쥐면 부서지고, 무심하게 놔두면 금세 식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관찰한다. 누가 내 마음에 온기를 더해주는지, 누가 그 온기를 바람처럼 흘려보내버리는지.


마음이란 결국 방향이다. 나를 향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멀리 있어도 따뜻함이 느껴지고, 날 대충 대하는 사람은 가까이 있어도 마음이 비어 있다.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 데에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마음을 잃을까 두려워 움켜쥐던 시절도 있었고, 너무 아파서 아무에게도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 모든 시절을 지나 지금 나는 깨닫는다. 마음은 쥐는 게 아니라 머물게 하는 것이라는 걸. 머무는 사람은 결국 알아서 머무르고, 떠날 사람은 어떤 노력을 해도 떠난다는 걸.


그래도 나는 여전히 희망을 품는다. 이 넓은 세상에서 언젠가 내 마음과 비슷한 온도를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는 조용한 희망. 그 사람은 내가 내민 마음을 당연히 여기지 않을 것이고, 그 마음의 의미를 가벼이 흘려보내지도 않을 것이다. 마음의 깊이를 바라볼 줄 아는 사람. 마음의 무게를 견딜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 앞에서는 내 마음이 더 이상 흘러내리는 물이 아니라, 오래도록 고이는 우물처럼 깊어지고 맑아질 것이다.


서로 다른 마음들이 부딪히며 흠집도 나고 금도 가겠지만, 그마저도 마음의 과정이다. 내가 건넨 마음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누군가의 마음이 내게 부담이 되지 않기를, 그리고 마음이 서로를 지키는 방식으로 흐르길 바란다. 지금의 이 씁쓸함도, 마음이 겪는 성장통이라 생각한다. 결국 마음은 나를 지켜주는 마지막 남은 집이고, 나는 그 집을 더 단단하게, 더 아름답게 지어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에게도 독자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마음은 잃을까 두려워 쥐는 것이 아니라, 닿을 사람에게만 천천히 열어두면 된다.

그 한 문장만 기억해도,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덜 다치고 더 단단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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