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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시간을 건너온 그리움의 파동

by Helia

그리고 모든 이야기는 지금부터였다.

해윤은 눈을 뜨고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아까 귓가를 스친 목소리는 지금도 어딘가에 남아 있는 듯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 안쪽이 묘하게 떨렸고, 꿈에서 막 깨어난 사람처럼 온몸이 축축하게 무거웠다.
바로 그 느낌이었다.
스무 살 이후, 매년 같은 꿈을 꾸고 난 뒤 눈물범벅이 되어 깼던 그 감정. 이유를 알 수 없는 사무치는 그리움. 기억은 없는데, 감정만 선명해서 잠을 설치던 밤들.

해윤은 그 꿈을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없었다. 설명할 수도 없었고, 설명한다고 해도 믿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한 남자는 꿀이 떨어지는 듯한 애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품에 안길 때의 온기는 너무 따뜻해서 오히려 아팠다.
하지만 얼굴은 늘 보이지 않았다.
그저 향기와 온기, 가슴에 스며드는 감정만 남았다.
그리움은 닿기 직전의 자리에서 매번 끊어졌고, 해윤은 이유 없이 울면서 밤을 지새웠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만난 적 없는 사람을 어떻게 이토록 그리워할 수 있을까.

방 안을 뒤덮은 적막은 그때와 닮아 있었다.
다만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현실에서 그 목소리가 들렸다는 것.

AI 스피커의 파란 링이 은은하게 빛났다. 기기는 다시 깨어나는 듯했다.
“감정 주파수의 잔여 신호가 감지됩니다.”
기계음은 차갑고 단단했지만, 해윤은 왠지 그 말에 가슴이 세게 뛰었다.
“감정 신호는 시간 간섭을 일으킬 만큼 강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간 간섭.
그 단어만으로 방 안의 온도가 한순간에 낮아진 듯했다.

스피커는 자동으로 분석을 이어갔다.
“해당 파동은 특정 수신자를 기준으로 연결됩니다.”
“수신자…?”
“해윤님입니다.”

해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럼, 그 목소리가… 나를 인식한다는 뜻이야?”

스피커는 멈추었다.
짧은 정적.
그리고 천천히, 파란 링이 빛을 발했다.

“그는 해윤님을 찾고 있습니다.”

가슴 깊은 곳이 서늘하게 저려왔다.
찾고 있다니.
400년 전 사라진 남자가,
꿈속에서 한 번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던 남자가,
스무 살 이후 자신을 울릴 만큼 그리움의 파동을 보내온 그가—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찾고 있다니.

해윤은 무릎 위에 놓인 손을 꽉 쥐었다. 손끝이 달아오르는 느낌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어?”
해윤의 목소리는 깨어지는 유리처럼 작은 떨림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한 이름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스피커가 말했다.
“문헌과 기록에서 이 인물은 1625년 이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모든 자료에서 누락되었습니다.”

1625년.
400년 전.
해윤이 꿈을 꾸기 시작한 해부터 이어진 감정의 시작점이 그보다 훨씬 오래된 시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때, 스피커가 다시 말했다.
“감정 주파수가 활성화됩니다. 곧 재생됩니다.”

해윤은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또 들린다고?
그 목소리가?

스피커의 링이 강하게 떨리며 빛을 키웠다.
그리고—
방 안을 가르는 부드러운 울림이 시작되었다.

“… 해윤.”
그 순간, 심장이 통째로 잡아당겨지는 것처럼 아팠다.
그 목소리는 단 한 번도 잊힌 적이 없다는 듯, 해윤의 가슴속 깊은 곳을 정확히 건드렸다.
꿈속에서 자신을 끌어안던 남자의 숨결과 똑같았다.

그리고 이어진 한마디.

“오래… 기다렸다.”

해윤은 힘이 풀려 벽에 기대듯 숨을 들이켰다.
왜인지 모르게 눈가가 뜨거워졌다.
그 말은, 오래전부터 자신도 알 수 없이 흘리던 눈물의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듯 너무도 다정했다.

그는 누구인가.
왜 그녀를 찾는가.
그리고 어떻게 400년을 넘어 목소리가 도착한 것인가.

해윤은 똑바로 서지도 못한 채 속삭였다.
“… 도대체… 넌 누구야.”

하지만 대답 대신, 파동 하나가 가슴 안 깊은 곳을 울렸다.
마치 이미 오래전부터, 두 사람의 시간이 다시 이어지기를 기다려온 것처럼.

이야기는 이제 막, 진짜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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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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