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날 아침에 찾아온 사람들
두 번째 날 아침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전화선이 뽑힌 거실은, 세상의 소리가 모두 바깥에 걸러져 있는 것처럼 고요했고,
그 고요가 오히려 어제보다 무서웠다.
하지만 어제의 울음이 채 마르지 않은 공기 속에서도
창문으로 들어오는 볕은 조금 더 부드러웠다.
아이도, 이모도 그 빛 아래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현숙이 방을 나왔을 때,
이모는 부엌에서 밥을 뜨고 있었다.
두 사람 앞의 작은 밥상에는
따끈한 흰밥과 김, 계란국이 놓여 있었다.
평범한 아침 식사였지만,
오늘은 그 평범함이 눈물 나게 소중해 보였다.
“잘 잤어?”
이모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울음을 참고 말한 사람의 목소리.
“응.”
현숙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작은 목소리 하나에도
이모는 안도의 숨을 짧게 내쉬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조용히 식사했다.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현숙은 밥을 삼키다가 몇 번이나 멈췄지만
어제보다는 조금 더 넘길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 아침은 어제와 달랐다.
식사를 마친 뒤,
이모는 설거지를 하면서 자꾸 시계를 흘끗 보았다.
사회복지사가 오기로 약속된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화선을 뽑아놓은 집 안에서 오직 단 한 명,
오늘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어른이었다.
식기를 모두 씻고 정리한 뒤에도
집 안에는 기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외부와의 연결이 끊긴 집은
섬처럼 고립되어 있었고,
그 고립이 오히려 조금은 안전해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톡,
톡,
톡.
문 두드리는 그 소리 하나가
집 안의 시간 전체를 깨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모는 손을 수건에 급히 쓸고 현관으로 갔다.
문을 열기 직전, 아주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 긴장감이 등 뒤에까지 전해졌다.
문 앞에는 사회복지사가 서 있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를 따라 들어온 사람.
하지만 얼굴에는 아이를 위하려는 따뜻함도 묻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약속대로 왔습니다.”
그 말에 이모는 간신히 미소를 지었다.
현숙은 문가에 서서
그 낯선 어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사회복지사는 아이에게 시선을 낮추며 말했다.
“현숙아,
조금 이야기할 수 있을까?
너 힘들게 하지 않을게.”
현숙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작디작은 고개 끄덕임에도
가슴속에서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사회복지사는 부드럽게 물었다.
“여기… 이모랑 지내는 건 어때?”
“어젯밤은… 무섭진 않았어?”
“현숙이가 원하는 건… 뭐야?”
말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지만
아이에게는 다 칼날 같은 질문이었다.
말을 잘못하면
세상이 또다시 뒤집힐 것 같았다.
“여기… 괜찮아.”
현숙의 대답은 아주 작았지만
확실했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이모의 눈빛이 살짝 떨렸다.
눈물을 삼키듯, 어금니를 한 번 다문 것처럼 보였다.
사회복지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은 여기서 지내는 게 제일 안전할 거예요.
이모님이 잘 지켜주고 계신 것도 보이고요.”
‘안전’이라는 단어에
현숙은 어깨를 조금 움찔했다.
어제의 ‘위험’이 얼마나 가까웠는지
그 말 하나로 다시 떠올랐다.
이모는 사회복지사와 서류를 확인하고,
학교 상담 일정, 아이의 정서 지원 계획 등을 논했다.
그 대화 동안
현숙은 조용히 손을 꼬물거리며 부엌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사회복지사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현숙아,
너… 잘하고 있어.
정말 잘 버티고 있는 거야.”
그 말은
아이의 심장 깊은 곳에
작은 등불 하나 켜는 것처럼 느껴졌다.
문이 닫히고
집안의 공기가 다시 차분해졌을 때,
이모는 부엌에서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다가와 말했다.
“현숙아,
오늘은 아무도 못 와.
전화도 안 울리고.
우리 둘만 있어.”
현숙은 그 말에
조금 안심이 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성인이 된 지금,
나는 그 둘째 날 아침의 공기를 생각한다.
전화벨도 없고, 소문도 없고, 비난도 없던
그 짧은 고요를.
그건 세상이 잠시 멈춰준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살아남고 있다’는 감각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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