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결국 문을 두드렸다
나는 처음으로 ‘살아남고 있다’는 감각을 배웠다.
그 감각은 단단하지 않았고, 오래 쥐고 있을 수도 없었다. 대신 다음 날 아침이 오면 다시 확인해야 하는 것이었다. 숨을 쉬는지, 발이 땅에 닿는지, 오늘도 하루가 이어지는지. 그렇게 나는 살아남는 일을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매일의 확인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며칠 뒤 엄마는 중환자실을 나와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병실 문 앞에 붙은 표지가 달라졌고, 출입을 막던 긴장도 조금은 느슨해졌다. 기계음은 줄었고, 커튼은 낮 동안 몇 번이나 열렸다 닫혔다. 엄마는 여전히 말을 하지 못했지만 얼굴 근육의 힘이 전과는 달랐다. 숨이 끊어질 듯 올라왔다 내려가던 호흡이, 이제는 천천히 이어졌다. 나는 침대 옆 보호자 의자에 앉아 엄마의 손을 잡았다. 꼭 쥐지 않아도 괜찮았다. 손이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엄마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이모는 다시 출퇴근을 시작했다. 아침이면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집을 나섰다. 흰 티일 때도 있었고, 검은 티일 때도 있었고, 날이 쌀쌀하면 카디건이나 후드 달린 가죽 재킷을 걸쳤다. 치마는 거의 입지 않았고, 옷에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다. 거울 앞에 오래 서는 법도 몰랐다. 출근하는 날엔 세면대 앞에서 잠깐 얼굴을 들여다보고, 파운데이션을 아주 얇게 바르고 눈썹을 한 번 정리하는 게 전부였다. 꾸미기보다는 정돈에 가까운 손길이었다. 머리는 어깨에 닿는 중단발이었고, 곱슬이라 비 오는 날엔 금세 부풀어 올랐다. 이모는 그런 날이면 “사자 됐다”라고 중얼거리며 손으로 머리를 눌러보지만, 이내 포기하고 그대로 출근했다.
아침마다 우리는 병원 앞까지 함께 걸었다. 이모는 병원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병실로 향했다. 누가 더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그게 우리의 낮이었다. 간호사들은 늘 바빴고, 차트는 빠르게 넘겨졌다. 커튼은 필요한 만큼만 열렸다 닫혔다. 누구도 오래 머물지 않았고,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엄마의 상태를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나에 대해 묻지 않는 공간. 나는 그 무심함 속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병실에서의 시간은 일정했다. 오전엔 햇빛이 침대 쪽으로 조금 더 들어왔고, 오후가 되면 창가 쪽이 밝아졌다. 보호자 의자는 오래 앉아 있으면 허벅지가 저려왔고, 나는 자세를 조금씩 바꿔가며 앉았다. 엄마의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놓아도 괜찮은 간격을 스스로 정했다. 간호사가 들어와 링거를 확인하고 나가면, 병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말 대신 속으로 하루를 정리했다.
이모는 쉬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전화를 했다. 덜 바쁜 날에는 몇 번이고, 바쁜 날에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전화를 기다리지 않았다. 울리면 받았고, 울리지 않으면 그냥 하루를 이어갔다. 이모가 사준 휴대폰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기종이었다. 걱정돼서 사준 거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혼자 이동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연결 하나쯤은 필요해졌다는 걸. 전화는 길지 않았다. “엄마는 어때?” “밥은 먹었어?” 그 정도면 충분했다. 안부를 묻는다는 건, 지금도 이어져 있다는 확인이었다.
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날들이 이어졌다. 이모가 야근을 하는 날에는 내가 먼저 집으로 갔다. 병원 로비를 지나 버스 정류장까지 걷는 길은 익숙해졌다. 집 앞에 도착하면 문 앞에 서서 숫자를 눌렀다. 네 자리의 비밀번호는 내 생일이었다. 예전에는 열쇠를 썼지만, 내가 자주 잃어버렸고 이모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따질 필요 없이 번호키로 바꿨다. 기억할 수 있는 것 하나에 집을 맡기는 방식이, 우리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 나는 불을 켰다. 가방을 내려놓고 신발을 정리하고 물을 한 컵 마셨다. 그다음에는 밥을 먹거나, 먹지 않거나, 텔레비전을 켜 두었다가 끄는 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순서는 늘 같았다. 그 순서 덕분에 집은 늘 제자리에 있었다. 이모가 늦는 날에도 집은 먼저 나를 받아주었다.
이모에게서는 늦을 것 같다는 메시지가 왔다. 먼저 밥을 먹으라는 말, 문 잘 잠그라는 말. 그 말들은 짧았고, 충분했다. 나는 혼자 밥을 먹고, 접시를 씻고, 불을 하나씩 껐다. 혼자 집에 있다는 사실을 굳이 의미로 만들지 않았다. 열 살이면 혼자 집에 올 수 있는 나이였고, 나는 이미 그 나이를 살고 있었다.
학교는 방학 중이었다. 그래서 당장은 아무도 묻지 않았고, 아무 데도 가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벽에 걸린 달력은 그대로였다. 날짜가 하루씩 넘어갈수록 빈칸이 줄어들었다. 나는 그걸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너무 오래 보면 마음이 먼저 앞서간다는 걸, 이미 몸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이 되면 이모가 돌아왔다. 가죽 재킷이나 카디건을 벗어 의자에 걸고, 손을 씻고, 머리를 풀었다. 비 오는 날이면 곱슬머리가 더 부풀어 있었고, 이모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우리는 말없이 밥을 먹었다. 말이 없다고 해서 불편하지는 않았다. 하루가 이미 충분히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기의 하루들은 그렇게 이어졌다. 엄마의 숨은 조금씩 안정되고, 이모의 근무표는 계속 바뀌고, 나는 병원과 집 사이를 오갔다. 누구도 크게 도와주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의 방식으로 살아갔다. 살아남고 있다는 감각은 요란하지 않게, 생활 속에서 유지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생활 안에서, 너무 빨리 알아버린 것들과 아직 모르는 것들을 함께 끌어안고 다음 날로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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