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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장례식장에서 배운 첫 번째 침묵

by Helia

폭풍은 소리로 오지 않았다.
그날의 폭풍은 침묵으로, 아주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왔다.
장례식장 입구에 서 있는 순간,
나는 열 살이었고, 동시에 스무 살쯤 된 것 같았다.

형광등 아래 희끄무레한 국화꽃이 늘어서 있었고
향 냄새가 공기 속에 둥둥 떠다녔다.
바닥은 너무 반질거려서
내 그림자가 제대로 모양을 잡지도 못했다.
그 조용한 공간에서
사람들의 눈빛만이 끊임없이 나를 찔렀다.

이모는 내 손을 꼭 잡고
문 앞에서 한 번 더 숨을 고르더니 말했다.

“현숙아, 마음으로만 인사해도 돼.
힘들면… 서 있지 않아도 돼.”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몸은 앞쪽으로 한 발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주변에 서 있던 어른들이
작은 목소리로 서로에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데려와야 하나…”
“그래도 아버진데…”
“애가 사람을…”
“마을 사람들 다 알잖아…”

어른들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 끊긴 말의 조각들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나는 손가락을 꼭 쥐었다.
살이 파고들 만큼.

이모는 그 시선과 속삭임을 모두 눈치채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얘는 무리하게 들어갈 필요 없어요.
현숙이는 피해자예요.
지금 중요한 건 조문이 아니라 안정이에요.”

이모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돌처럼 묵직하게 울렸다.
그 순간,
장례식장의 공기 전체가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모를 올려다봤다.
평소엔 웃을 때 작은 보조개가 잡히는 얼굴인데
지금은 그 보조개의 자리마저
단단한 결심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모가 서 있는 자리만
이상하게 환하게 보였다.

조금 뒤, 엄마 쪽 친척 한 명이 다가와
살며시 말했다.

“많이 놀랐지?
근데 잘못한 거 하나도 없다.
어른들이… 더 잘했어야 했는데.”

그 말이 고마운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나는 그저 고개를 숙였다.
말보다 눈물이 먼저 고여
눈가를 뜨겁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오고 가기를 반복했다.
그들 대부분은
인사를 하면서 내 쪽을 슬쩍 보았다.

불쌍하다—
하지만 어딘가 의심스럽다—
동정과 계산이 반씩 섞인 눈빛.

어른들의 시선은
말보다 더 긴 칼날이었다.

나는 그 칼날 틈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조용히 내 앞을 가로막았다.

이모였다.

이모는 나를 등 뒤로 살짝 밀어 넣으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얜 이제 쉬어야 해요.”

그 말은
내 대신 싸워주는 방패 같았다.
내가 세상을 견디는 동안,
이모는 세상과 맞서주는 사람이었다.

장례가 조용히 마무리될 즈음
장례식장 뒤쪽 복도에는 바람이 조금 스며들어
커튼을 살짝 흔들었다.
나는 구석 의자에 앉아
그 흔들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바람 속에서
어른들의 시선들,
속삭이던 말들,
내가 하지 못한 인사,
두려움과 미안함,
그 모든 게 뒤섞여 있었다.

이모가 내 옆에 조용히 앉았다.
손이 내 무릎 위에 살며시 내려왔다.

“현숙아,
너 오늘 진짜 잘했어.”

그 말이 들리는 순간
참고 있던 울음이 다시 차올랐다.

“근데… 나 아무것도 안 했어…”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이모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라
견딘 거야.
그게 제일 어려워.”

나는 그 말의 의미를
그때는 다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따뜻하다는 건 알았다.
내가 살아 있는 것 같다는 것도.

성인이 된 지금,
엄마가 치매로 나를 잊어갈 때마다
그날의 이모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

견디는 것은 아무 행동도 아닌 듯해 보여도
사실은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미처 몰랐다.
장례식장의 침묵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진짜 폭풍은, 그다음 날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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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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