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에게 주어진 선택지
그리고 나는 그 생활 안에서, 너무 빨리 알아버린 것들과 아직 모르는 것들을 함께 끌어안고 다음 날로 넘어가고 있었다.
개학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아침마다 동네는 어김없이 깨어났고, 아이들은 가방을 메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겹쳐 들렸다. 나는 창문을 열지 않았다.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세상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고, 그 자리에서 내 몫만 비어 있었다.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었다. 빠지고 싶다고 빠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병가라고 부르기에는 맞지 않았고, 방학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날이 흘러가고 있었다. 처음 며칠은 담임선생이 알아서 정리해 주었다. 학교에는 내가 잠시 쉬고 있다고만 말했고, 아이들에겐 방학이라고 둘러댔다. 정확하지 않은 말이라는 걸 선생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가장 덜 다치는 표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면,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더 커질 테니까.
나는 병원과 집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엄마의 상태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지만,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병실의 공기는 늘 팽팽했고, 회복이라는 말과 불안이라는 말이 같은 공간에 떠다녔다. 나는 보호자 의자에 앉아 시간을 잘게 나누어 썼다. 오전, 점심, 오후, 저녁. 하루를 한 덩어리로 생각하면 숨이 막혔다. 나누면, 하나씩 넘길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종종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 집 애 말이야…”
이름은 나오지 않았지만, 누구를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았다. 나는 이미 ‘아이’가 아니라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살리려고 했다는 말은 빠지고, 골프채와 아빠라는 단어만 남아, 이야기는 가장 자극적인 모양으로 굳어 있었다. 열 살이라는 나이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보지 않아도 보이는 시선 속에 서 있었다.
개학 후 며칠이 지나자 담임선생이 병원으로 찾아왔다. 병실이 아니라 휴게실에서 만나자고 했다. 아이가 누워 있는 자리와 학교 이야기가 섞이지 않게 하려는 선택 같았다. 나는 엄마를 간호사에게 잠시 맡기고 휴게실로 내려갔다. 휴게실은 병실보다 밝았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섞여 있었다. 커피 자판기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텔레비전에서는 낮 뉴스가 흘러나왔다. 지나치게 일상적인 공간이라서, 오히려 더 긴장이 됐다.
선생은 이미 와 있었다. 테이블에 두 손을 올려놓고 앉아 있었다. 가방은 무릎 위에 얹혀 있었고, 평소보다 조금 더 단정해 보였다. 선생은 나를 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말을 고르는 어른의 얼굴이었다.
“현숙아.”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학교에 나오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선생님도 알아.”
나는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컵은 이미 식어 있었는데도 손바닥에 땀이 찼다. 쉽지 않다는 말은 이미 수없이 되뇌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더 빠지면, 이 상태로는 졸업이 힘들어질 수도 있어.”
겁을 주는 말은 아니었다. 사실을 그대로 놓는 말이었다. 초등학교라는 제도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선생은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지가 있어.”
선생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말했다.
“하나는 전학을 가는 거야. 지금 일과는 거리가 있는 곳으로.”
“다른 하나는, 계속 학교로 나오는 거고.”
“마지막 하나는… 1년 정도 쉬고, 내년에 다시 다니는 거야. 한 학년 어린아이들이랑 같이 시작하는 거지.”
세 가지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조용히 놓였다. 어느 것도 가볍지 않았고, 어느 것도 쉽게 고를 수 없었다. 전학은 도망처럼 느껴졌고, 계속 학교로 나오는 건 부딪힘이 분명했고, 1년을 쉬는 선택은 시간을 뒤로 미루는 일이었다. 나는 발끝을 의자 아래에서 계속 움직였다. 멈추고 싶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네 생각은 어때?”
선생은 재촉하지 않았다. 답을 당장 듣고 싶어 하는 눈도 아니었다.
“선생님은 말이야,”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네가 계속 나와서, 제때 졸업했으면 해.”
그 말에는 기대가 있었지만 강요는 없었다.
“이건 네 잘못 아니야.”
선생의 목소리는 조금 더 낮아졌다.
“너무 자책할 필요도 없어.”
“도망갈 필요도 없고.”
“숨어 다닐 필요도 없어.”
그 말에 나는 숨을 한 번 삼켰다. 아무도 나에게 도망치고 있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는 걸 들킨 기분이 들었다.
“일단 나와서, 한 번 부딪혀보는 건 어떠니.”
그 말은 용기를 요구하는 말이 아니었다. 세상을 정면으로 보라는 말도 아니었다. 더 이상 멈춘 상태로 두지 않겠다는 어른의 제안이었다.
휴게실의 소음이 다시 귀에 들어왔다. 자판기에서 컵이 떨어지는 소리, 누군가 웃는 소리, 바퀴 끌리는 소리. 세상은 여전히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 굴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 회전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할지, 방향을 틀어야 할지, 아니면 잠시 속도를 늦춰야 할지 생각했다.
선생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이모랑 같이 이야기해 보고,”
“천천히 결정해도 돼.”
그 말은 선택을 넘기는 말이 아니라, 혼자가 아니라는 표시처럼 들렸다.
휴게실을 나서 병실로 돌아오는 길, 나는 일부러 발걸음을 늦췄다. 병실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골랐다. 엄마는 여전히 누워 있었고, 숨은 며칠 전보다 더 고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엄마의 손을 잡았다. 방금 들은 말들이 손바닥을 통해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날 저녁, 이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쉬는 시간에 걸려온 짧은 통화였다.
“선생님이 병원에 오셨어.”
나는 사실만 말했다.
이모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말했다.
“그래.”
그리고 덧붙였다.
“이제… 정해야 할 때가 왔나 보다.”
놀람도, 회피도 없는 목소리였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사람의 말투였다. 나는 그 순간 알았다. 더 이상 애매한 상태로 머물 수 없다는 걸. 학교로 돌아가든, 다른 학교로 가든, 아니면 시간을 한 번 더 건너뛰든, 어딘가는 선택해야 한다는 걸.
그날 밤,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학교라는 단어보다, 다시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열 살이었기 때문에, 이 선택은 더 무거웠다. 너무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선택지를 받아들여야 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부딪힌다는 건 무엇일까. 도망치지 않는다는 건 어디까지일까. 숨지 않는다는 건 정말 가능한 일일까. 답은 아직 없었지만, 선택지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 사실 하나가 밤을 아주 조금 덜 무겁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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