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문을 두드리던 아침
폭풍은 문밖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그날 아침, 아주 공손한 손짓으로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서 시작됐다.
식탁 위엔 식지 않은 밥과 김치 접시가 놓여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온 옅은 햇빛이 테이블 모서리를 따라 번지고,
숟가락은 아직 물기조차 마르지 않았다.
평범한 하루의 시작 같았지만
그 평범함이 오히려 불길했다.
그리고—
톡.
톡, 톡.
작고 또박한 노크 소리가 집 안 공기를 쨍하게 갈랐다.
숟가락이 살짝 흔들리며 그릇에 부딪혀
가느다란 "팅" 소리가 울렸다.
그 작은 소리마저 크게 들렸다.
이모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빛이 단단하게 굳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문 앞에 어떤 사람들이 서 있는지 알 것도 같았다.
“현숙아, 잠깐 방에 들어가 있을래…?
무서웠지?”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어디선가 금이 간 듯한 떨림이 있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문틈에 눈을 가까이 대고 숨을 죽였다.
문이 열리고
차가운 바람처럼 두 명의 어른이 들어왔다.
한 명은 남자, 한 명은 여자.
둘 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있었지만
그들의 친절은 어디에도 닿지 않는 ‘업무적’ 친절이었다.
옷깃에서조차 차가운 공기가 풍겨왔다.
“안녕하세요.
경찰서, 그리고 아동보호전담팀에서 왔습니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마치 집 안에 있던 모든 온도가 1도씩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무슨 일로요?”
이모는 최대한 평온을 유지했지만
그 손이 식탁 가장자리를 잠깐 움켜쥐는 걸 나는 보았다.
놓치지 않으려는 손.
떨림을 눌러 삼키는 어른의 손.
여자 직원이 서류철을 들고 말했다.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진술을 조금 더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동 심리 평가도 진행해야 하고요.”
이모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남자 직원이 덧붙였다.
“부담 주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보호 환경의 적절성도 함께 봐야 해서요.”
‘보호 환경.’
그 말이 내 귀를 찌르는 순간,
문틈 너머에서 내 심장이 툭 하고 떨어졌다.
마치 내가 누군가에게 맡겨진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모는 두 사람 앞에 서서
문턱을 가로막았다.
“현숙이는 지금 많이 불안정해요.
하루 종일 장례식장에 있었고…
오늘은 힘들어요.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직원들은
마치 이미 답을 알고 온 사람들처럼
서로 눈빛만 교환했다.
“시간 드릴 수 있습니다.”
여자 직원이 말했다.
“하지만 오늘 안엔 꼭 만나야 합니다.
아이가 직접 이야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 말의 어투는 부드럽고 정중했는데
이상하게 더 차갑게 느껴졌다.
돕는 태도였지만, ‘판단하는 사람들’의 공기였다.
이모는 방 쪽을 보며
아주 천천히 숨을 한 번 들이켰다.
“… 점심 지나서요.
아이 밥이라도 먹이고—
그다음에 오세요.”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오겠습니다.”
문이 닫히는 순간
복도로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집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하지만 그 고요는
어제까지의 고요가 아니었다.
폭풍이 문 안으로 스며든 뒤의 고요—
언제든 터질 수 있는 긴장의 고요였다.
잠시 뒤,
방 문이 조금 열렸다.
이모가 나를 보며
입술만 움직여 미소를 지었다.
눈은 웃지 않았다.
“현숙아…
정말 무서웠지?”
나는 다가가 이모의 손을 잡았다.
이모의 손은 차갑고, 조금 떨리고 있었다.
어른도 무서워한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이모는 내 손을 감싸며 말했다.
“괜찮아.
네 잘못은 하나도 없어.
어른들이 해야 하는 건…
이모가 할게.”
그 말은 울음보다 더 깊게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성인이 된 지금,
엄마의 기억이 천천히 흩어지는 모습을 보며
가끔 그 아침이 떠오른다.
문을 두드리던 그 작은 소리.
그 소리에 실린 세상의 시선.
그리고 그걸 온몸으로 막아섰던 이모의 등.
그날 아침의 노크는
결코 ‘시작’이 아니었다.
그건 예고였다.
그리고 나는 아직 몰랐다.
그날 오후,
또 하나의 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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