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폭풍이 들이친 자리

by Helia

이제 나를 피해서 세상이 멀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세상 쪽으로 한 발을 옮겨야 할 때라는 걸.

그 발은 학교로 향하지 않았다.
아빠의 사망 선고 소식은 길지 않았다. 이모는 전화를 끊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되는 얼굴이라는 걸, 이미 여러 번 봐왔기 때문이다. 대신 집 안의 공기가 먼저 달라졌다. 아직 나서지도 않았는데, 이미 다른 장소에 들어온 것 같은 공기였다.

버스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가는 동안 나는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손끝이 이상하게 차가웠다. 버스는 늘 다니던 노선을 그대로 지나갔고, 창밖의 풍경도 평소와 같았다. 편의점 불빛, 횡단보도, 가방을 멘 아이들. 그 평범한 장면들이 오늘과 어울리지 않아, 나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흔들림에 맞춰 몸이 좌우로 조금씩 쏠릴 때마다, 어딘가에서 중심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정류장에서 내려 장례식장까지 걷는 길은 짧았다. 그런데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신발 안쪽에서 발가락이 바닥을 긁었다. 건물 앞에는 이미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검은 옷들이 입구를 채우고 있었다. 나는 이모 옆에 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을 벗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한쪽 신발을 벗고, 다른 쪽 끈을 풀고 있을 때였다.

“야.”

위에서 떨어진 목소리에 손이 멈췄다.
끈을 잡고 있던 손가락이 그대로 굳었다.

“네가 여길 어디라고 와.”

고개를 들자 낯익은 얼굴들이 서 있었다. 아빠 쪽 친척들이었다. 몇 번 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 선 건 처음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나를 지나, 이미 다른 결론을 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 네가 올 자리가 아니야.”
“당장 나가.”

나는 신발 한 짝만 벗은 채 서 있었다.
발바닥이 차가운 바닥에 닿아 있었다.
이모의 손이 내 어깨 위에 얹혔다. 그 손이 단단해지는 게 느껴졌다.

“아비 잡아먹은 년이 무슨 낯짝으로 여기까지 와.”

그 말은 숨도 섞이지 않고 나왔다. 준비해 둔 문장처럼 정확했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시선을 돌렸다. 말하지 않는 얼굴들도 같은 편이라는 걸, 나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귀 안쪽이 멍해졌다. 소리는 들리는데, 의미가 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모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분명했다.

“현숙이한테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사람들의 시선이 잠시 이모에게로 옮겨갔다.
이모는 나를 가리키지 않고, 그들을 똑바로 보며 말을 이었다.

“어르신 손녀잖아요.”
“그러니까… 아빠한테 인사는 하게 하셔야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쪽에서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
할머니가 일어나고 있었다.

“비켜.”

할머니는 나를 똑바로 보지 않았다.
곧장 다가와 아무 말 없이 손을 들었다.

따악—

소리가 먼저 터졌다.
그다음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뺨이 아니라, 머리 전체가 한쪽으로 쏠린 느낌이었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흔들렸고, 귀 안이 울렸다.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울음도,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몸이 먼저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잠깐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가 뭐라고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입술이 움직이는 건 보였지만, 소리는 멀리 있었다.
바닥 무늬만 또렷하게 보였다.

“이 년이 어디라고 기어들어와.”

이번에는 팔이 잡혔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어른의 손은 아이의 팔을 너무 쉽게 움켜쥐었다.

“나가.”
“당장 나가.”

나는 끌려 나왔다.
아직 벗어둔 신발 한 짝이 문턱에 남아 있었다.
발이 걸리면서 몸이 앞으로 쏠렸다.
차가운 바닥이 맨발에 닿았다.

“놓으세요!”
이모의 목소리가 그제야 크게 들렸다.

하지만 이미 나는 입구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국화꽃 냄새가 갑자기 멀어지고,
바깥공기가 얼굴을 세게 때렸다.

“다신 오지 마.”

할머니의 목소리가 뒤에서 떨어졌다.
문은 닫히지 않았다.
굳이 닫을 필요도 없다는 얼굴들이었다.

나는 바깥에 서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팔이 잡혔던 자리가 늦게서야 욱신거렸다.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바로 손이 가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오가며 나를 스쳤다.
어떤 시선은 위에서 아래로,
어떤 시선은 아예 나를 없는 사람처럼 지나갔다.

나는 천천히 신발을 신었다.
끈을 한 번 묶고, 다시 풀었다가 다시 묶었다.
손이 조금 떨렸지만, 매듭은 끝까지 만들었다.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미 너무 많은 게 한꺼번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왔는데도, 나는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입구 근처에 서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나가라는 말은 들었지만, 아직 끝난 것 같지는 않았다.
끝내지 못한 일이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누군가 “얘야” 하고 불렀지만 멈추지 않았다.
어른들의 손이 다시 뻗어오지 않았다.
막지 않는다는 선택을 한 얼굴들이었다.

국화꽃 한 송이를 집어 들었다.
꽃잎이 생각보다 단단했고, 차가웠다.
영정사진 앞에 섰다.
이번에는 오래 보지 않았다.
오래 보면, 말이 달라질 것 같아서였다.

꽃을 올려두고,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들릴 듯 말 듯한 소리였다.

“잘 가, 아빠.”

숨을 한 번 고르고, 말을 이어갔다.

“그곳에서… 부디 죗값 받아.”

말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나 용서 안 할 거야.”
“그러니까… 아빠도 나 용서하지 마요.”

그 말은 울음도 아니고, 기도도 아니었다.
이미 마음속에서 여러 번 끝낸 문장을
이제야 입 밖으로 옮긴 것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사진을 다시 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돌아섰다.

이번에는 아무도 막지 않았다.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내가 나가는 걸, 다들 보고만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공기가 달랐다.
장례식장의 냄새가 서서히 멀어졌다.
나는 신발을 다시 고쳐 신었다.
이번에는 천천히, 제대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에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모도 말하지 않았다.
버스는 정류장마다 멈췄고, 사람들은 타고 내렸다.
그 평범한 반복이 이상하게 숨을 쉬게 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현관 불을 켜고 들어왔다.
신발을 벗고, 가방을 내려놓고
나는 그대로 서 있었다.
몸에 묻은 하루가 아직 떨어지지 않은 느낌이었다.

이모는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고 부엌으로 갔다.
물 끓는 소리가 났다.
컵을 꺼내는 소리도 들렸다.

그 소리를 듣다가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모.”

이모는 고개를 들었다.
“응.”

나는 잠깐 바닥을 봤다가 말했다.

“나… 학교 갈래.”

한 박자 쉬고, 말을 덧붙였다.

“가야겠어.”

이모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한 번 더 보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말 뒤로, 우리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가방이 놓인 쪽을 한 번 더 바라봤다.
내일은 아니어도,
곧 그 가방을 메고 문을 나서게 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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