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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꿈 단편집

그를 죽인 밤, 내가 잊지 못한 얼굴

그의 진짜 이름은 끝내 알 수 없었다

by Helia

그는 누구였을까. 꿈에서조차 이름 한 번 불러보지 못했던 남자. 낮고 그늘진 담벼락에 기대 서 있을 때, 그의 실루엣이 유난히 흐릿했던 이유를 나는 여전히 모른다. 얼굴을 자세히 본 것도 아닌데, 낯익은 정서가 스며 있었고, 오래 잊은 슬픔처럼 가슴 한쪽을 건드리던 사람이었다. 현실에서 본 적 없는 이인데도, 그의 존재가 꿈속에서 내게 너무 가까웠다. 마치 내가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문을 열어 그와 마주친 듯한 묘한 친밀함.

나는 그를 왜 죽였을까. 분명 배신당한 것도 맞았고, 살아남기 위해 선택해야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 이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마치 그의 죽음이 단순히 복수나 생존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처럼. 오히려 오래된 관계가 끝나는 소리처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문이 닫히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그를 향한 내 손끝의 결단은 그가 나를 버린 순간 이미 예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날 지키기 위한 칼이기도 했고, 동시에 누군가를 손에 쥐고 살아가던 과거의 나 자신을 잘라내는 칼이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이해되지 않는 질문은 이것이었다. 그는 날 사랑한 걸까. 말 한마디 없었고, 손끝 한 번 닿은 적 없었는데, 그의 눈에 깃들어 있던 기묘한 망설임이 꿈에서 깨어난 뒤까지 오래 남아 있었다. 배신한 사람의 눈빛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도 나를 향해 무언가를 전하려던 사람의 눈빛 같았다.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비틀린 감정이었고, 미움이라기엔 너무 깊었다. 어쩌면 그는 나를 사랑했고, 그 사랑이 자신을 지키는 데 방해가 된다고 믿어버린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를 밀어내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나를 버리면서도 내 손끝을 끝내 피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꿈에서 그를 죽였지만, 깨어난 후 오히려 그가 나를 더 오래 붙잡았다. 배신당해 죽인 사람인데도, 이상하게 마음에 서늘하게 남아 있는 온기 같은 것. 이해되지 않는 감정의 꼬리. 사랑이었을까, 두려움이었을까, 혹은 전생을 건너온 오래된 인연의 잔해였을까.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나는 그를 죽였으면서도, 결국 끝내 그가 누구였는지 알지 못한 채 아침을 맞이했다는 것. 그건 마치 스스로에게 던져놓고 끝내 회수하지 못한 질문처럼 마음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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